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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앞 잔디광장 '또다른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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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막을 수도 없고 놔둘 수도 없고…."

시청 앞 잔디광장을 조성 중인 서울시가 미리부터 고민에 싸여 있다. 시청 일대 교통이 꽉꽉 막힌다는 시민들의 원성을 사면서까지 공사를 강행하고 있지만 5월에 광장을 개방하면 시위대나 노숙자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던 시청 앞을 열린 광장으로 바꾸기로 하고 지난 1일 공사에 들어갔다. 3800평의 부지 중 4계절 푸른 양잔디를 심는 타원형의 잔디광장은 1900평 규모. 광장 주변 1400여평에는 보도용 화강석을 깔고 나머지 공간에는 주목을 심고 바닥조명을 설치한다. 벤치나 그늘막은 설치 계획이 없다.

문제는 이 광장이 시위 장소나 노숙자 텐트촌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시청 앞은 거의 매일 각종 민원인들이 피켓시위나 1인 시위를 벌이는 '단골 시위터'다. 8일에도 상암동 철거시민들의 피켓시위가 있었고 얼마 전에는 시내 통행 제한에 불만을 품은 기중기 운전기사들이 갑자기 시청으로 쳐들어와 게릴라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잔디광장은 궐기.투쟁.성토 장소로 오용될 것이 뻔하다"며 "교통체증만 유발하고 시민에게 휴식처도 못 되는 광장이라면 무엇하러 조성하느냐"며 서울시 홈페이지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게다가 지하도 노숙자들이 잔디광장으로 둥지를 옮겨 아예 텐트를 치고 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내 노숙자는 2800여명이다.

뜻밖의 복병을 만난 서울시는 '광장 설치 및 이용에 관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등 허둥지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들 누구나 일광욕이나 산책 등을 즐길 수 있도록 광장을 전면 개방하는 게 원칙"이라며 "그러나 시위대 등이 몰려 올 경우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이를 제한하는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시는 이용제한이 인권침해에 해당하는지를 법률적으로 검토 중이다. 서울시는 다음달 2일까지 잔디광장 이름을 홈페이지(http://www.seoul.go.kr)로 공모하고 조례 제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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