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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도씨탈출기>12.쿠데타 겁낸 김정일 망명비행기 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조선이 올해를 넘길 수 있을까.』『뛰려면(망명)유럽이나 미국으로 가야할텐데.』지난 92~93년께 북한 권력층 두셋만 모이면 은밀하게 나누던 얘기다.드러내놓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북한 체제에 대한 권력층의 불안감은 남한에서 생각하는 것보 다훨씬 심하다.
북한 지도부의 불안감은 지난 89년 동독과 헝가리.루마니아등동구권 국가들과 소련 붕괴에서 비롯됐다.한마디로 소련이 밀어줄때도 힘들었는데 이제 모스크바가 무너진 이상 북한이 더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특히 93년에 그같은 불 안감은 최고조에달했다.극심한 냉해로 농사를 망친데다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층의 이같은 불안감은 은밀한 해외 도피 준비로 나타났다.우선 자식들을 대외경제위원회같은 기구에 취직시켜 하나둘씩해외로 내보내기 시작했다.또 달러도 모아놨다.그결과 현재 북한고위 인사치고 해외에 자식.친척을 하나둘씩 안 내보낸 집안이 없을 정도다.내가 93년12월 중국으로 나온 것도 북한이 무너질 경우에 대비,해외에 거처를 마련해놓기 위해서였다.
김정일(金正日)도 당시 상당한 불안감을 느낀 듯하다.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친위여단을 창설한데 이어 스위스은행 비밀 계좌에수십억달러를 예금해 놓았다.게다가 평양 근교 미림 비행장에 탈출용 비행기까지 대기시켜 뒀다.만일 쿠데타가 발 생할 경우 친위여단으로 저지하고,안되면 해외로 망명할 준비를 해놓은 셈이다. 그러나 평양의 당.정.군(黨.政.軍)은 이같은 상황 변화에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우선 북한 군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인민군 현대화다.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오진우派와오극렬派로 갈려 갈등을 빚고 있었다.게다가 군장 성들은 1군과2군등 출신군 별로 갈등이 심하다.인민군 요직에 자기 사람 앉히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진우가 사망한 현재 오극렬이 차기 인민무력부장직에 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정(黨政)간에도 개방.개혁에 대한 분명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권력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그 대표적인 예가 김국태-김달현 간의 갈등이다.
김국태는 혁명원로 김책의 큰아들로 혁명 2세대다.직책은 당중앙위간부담당비서.
김국태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지만 머리는 나쁜 편이다.개방이뭔지도 모르는 인물이다.김달현도 혁명2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며 김일성 처조카 사위로 배경이 탄탄하다.
머리 좋고 배짱이 아주 센 인물이다.개방파인데다 김정일과 인간적으로 친했다.개인적으로 나의 고모부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2년 대외경제위원회위원장을 맡고있던 김달현이 국가계획위원장겸 부총리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김달현은 부총리로 올라가면서 후임 인사로 심복인 이성대를 앉힐 생각이었다.이성대는 정무원 무역부 부부장 출신으로 駐중국 대사관 참사를 역임한 인물.
반면 김국태는 자신과 알쌈(한통속)인 최정근을 대외경제위원장직에 앉힐 요량이었다.당시 김국태는 당중앙위간부담당 비서를 맡고 있어 간부 인사권을 한손에 틀어쥐고 있었다.
92년12월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다.김정일은 휴식 시간에 김달현을 잠깐 불러내 대외경제위원장직에 최정근이 내정됐음을 귀띔해줬다. 그러자 金은 난색을 표했다.崔를 임명할 경우 자신이 부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버텼다.이같은 행동도 김달현 정도 배짱있는 인물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김달현이 강경하게 나오자 김정일이 물었다.『그럼 누굴 시키면좋겠나.』그러자 김달현은 이성대를 추천했다.당시 김정일은 이성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러나 자기와 친한 김달현이 워낙세게 추천하자 즉석에서 최정근을 명단에서 지워버리 고 이성대라고 적어 넣었다.
잠시후 대의원석에 앉아있던 최정근은 까무러치게 놀랐다.직전 확인한 인사 명단에는 분명히 대외경제위원장직에 자기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발표된 것은 이성대였기 때문이다.김국태가 이때부터 김달현에게 이를 갈고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부지배인 좌천 개방파인 김달현은 그후 하루아침에 부총리직에서 밀려나 2.8비날론기업소 부지배인으로 쫓겨갔다.그가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군수공장에 배정된 전기 30%를 탄광과기업소로 돌렸기 때문에 문책을 받은 것이다.이같은 좌천 배후에는 김국태 일파의 음모가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 정무원과 무역일꾼들은 북한 체제가 개방.개혁외에는 살길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는 김국태처럼 아무 생각없이 권력 유지가 유일한목표인 인물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리=崔源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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