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중년의위기>2.人事병목땐 40代후반 부장들 표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에 다니는 K(46)부장은 요즘 최신곡 『슈퍼맨의 비애』를 애창한다.노래는 잘 못 부르지만 가사가 자신의 요즘 심경과 꼭 들어맞는듯 해서다.
그는 77년 이 그룹에 공채로 입사,부장까지는 승승장구했으나지난해말 임원승진에서 누락됐다.
동기 20여명중 딱 두사람만 승진하는 좁은문이었다.동기들에 한해 뒤지면 대수냐고 자위할 수도 있겠지만 후배기수 한명이 발탁돼 먼저 별(이사)을 단 것은 심각한 사태였다.올 연말에는 동기 18명과 1.2년 후배 40여명,누락된 선배 기수를 포함해 70여명과 힘든 진급경쟁을 해야하는 처지에서 결코 후배들보다 유리한 입장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마치 노랫말처럼 아내는아직도 그를 「슈퍼맨」으로 알고 있다.
K부장의 처지는 우리 주변 40대 샐러리맨들의 공통분모에 속한다.왜 이렇게 됐을까.
중앙대 정연앙(鄭延昻.인사관리)교수는 『불행히도 40대말 부장들에게 인사병목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70~80년대 각 그룹들은 경쟁적으로 회사수를 불려나갔다.그래서 잘나가는 사람이면 30대에 사장도 지냈고 40대 초반이면대체로 이사명함은 내밀 수 있었다.그러나 90년대 들어 경제력집중 방지책이 강화되면서 대기업그룹은 세포분열을 중지하고 오히려 계열사를 통폐합하는 그룹이 늘고 있다.
여기다 3~4년전부터 팀제를 도입,팀장에 임원대신 부장.차장들을 대거 앉혀 임원자리가 준만큼 부장급에 정체가 집중됐다.
「창립이래 최대의 승진인사.」지난해말 주요 대기업 그룹들은 임원인사를 발표하면서 경쟁적으로 이렇게 자랑했다.자리는 줄었는데도 승진은 최대규모라면 무슨 뜻인가.그만큼 기존 임원들이 알게 모르게 자리를 잃었다는 말이 된다.
종합상사 S사는 매년 이사대우 승진대상 부장들이 60명쯤 된다.대략 40대 후반들이다.이중 승진하는 사람은 10명이 채 못된다. 모 항공사에서는 지난해말 대상자 30여명중 6명만 이사대우로 승진했다.H그룹 기조실 관계자는 『매년 이사대우 승진대상자중 10%내외만 승진한다.이는 다른 그룹들도 마찬가지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결국 10명중 1,2등만 이사의 반열에 들고 3등이하는 좌절감을 애써 덮고 부장으로 눌러앉아 있지만 그것도 한두해다.관계사로 전출되는 배려를 받기도 하나 계열사 역시 적체는 마찬가지여서 텃세에 밀려나기 일쑤다.
부장급에서의 적체는 이제 차장급이하에까지 파장을 미치고 있다.게다가 올들어서는 과장이상 관리직에 대해 직급정년제를 실시하는 회사도 늘고 있어 40대초반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40대후반에 이사대우를 달았다고 출세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임원조직은 더욱 가파른 경사의 피라미드를 이룬다.「대우」자를채 떼지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정기주총에서 이름 석자가불리지 않으면 군말말고 보따리를 싸야 한다.L 그룹 H모(47)이사는 『술좌석에서 젊은 사원들이 「우리는 정년이 보장된 사원이다.이사는 촉탁아니냐」고 농을 걸면 별 대꾸할 말이 없어 웃고 만다』고 했다.
LG그룹의 지난해 신임이사대우는 평균 46세,이사 48세,상무 50세다.월간 『현대경영』이 지난해말 승진한 신임이사를 분석한 결과 평균연령은 역시 46세였다.
소리소문없이 회사를 떠나는 중년들중 상당수는 회사사정상 간부급의 군살빼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자인하지만 『왜 하필 나냐』는 불만은 감추지 않는다.한국기업의 군살빼기방식은 인사의 객관성.투명성 등이 확립된 그래서 「자르는 데도 문화 」가 있는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훨씬 덜 세련됐다는 지적이다.
객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지만 「회사의 치부를 너무 많이 알고있기 때문에」 또는 「줄을 잘 섰기 때문에」책상이 치워지지 않고 있는 사람이 남아 있는 기업에서 특히 이런 불만이 설득력을갖는다. 〈趙鏞鉉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