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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예술 생존 위한 법' 물거품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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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27일 40여개 문화예술단체 대표들은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 모여 문예진흥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촉구했다. 배우 강태기(右)씨는 "개정안은 민생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제공=문예진흥원]

이성림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장.황석영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이사장.성기조 펜클럽 회장.김지숙 연극협회 부이사장.문예진흥원 강형철 사무총장.소설가 조정래씨 등은 8일 국회를 방문,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문예진흥법 개정안을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해달라"고 요구하기로 했다.

이들이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함께 국회를 찾는 것은 8일 열리는 제246회 임시국회에서도 '문화예술진흥법'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해 결국 폐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 임시국회는 16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정부 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문예진흥법 개정안은 현행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폐지하고 대신 민간 위주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이 골자.

현행법(23조)의 '모금을 할 수 있다'는 개정안에서 '기부할 수 있다'로 바뀌어 로또복권 수익금 등의 일부가 문화예술인들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했다.

황석영 민예총 이사장은 "대기업이 사회봉사 차원에서 뒷돈을 대는 경우가 아니면 신생 문예지들은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고, 인사동 화랑가는 전에 없이 썰렁해 젊은 미술가들은 전시회를 열 엄두도 못낸다"며 "나 같은 사람은 괜찮지만, 젊은 후배 문인.연극인.미술인들을 위해서는 새 법이 시급히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컨대 로또 복권의 수익금 중 5% 가량을 기부받아 예술인들을 위해 쓰도록 해야 한다. 일정 기간 이상 발행한 실적이 있는 문예지에 게재된 작품의 필자에게 직접 고료를 지원하는 방식이면 별 잡음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예술 장르들이 현장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통과된 복권 및 복권기금법도 수익금 중 일부를 문화예술진흥에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구체적인 배분 기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회 문화관광위는 올 들어 두차례 법안심사소위를 열었을 뿐 여야간 의견이 엇갈려 법 개정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상임위조차 통과되지 못한 만큼 이번 회기내 개정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이다.

여야 간 가장 큰 이견은 개정안이 규정한 문화예술위원회의 인원 구성 방식. 법안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위촉하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겉으로만 민간 자율이지 실제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문화예술계에서 줄곧 문제가 돼 온 '코드 인사'를 되풀이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므로 이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안에 문화부 장관의 감독권(개정안 26조)이 개정안에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나 위원회에 공무원을 파견할 수 있도록 한 조항(23조)도 개정안의 '민간자율'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개정안이 정한 위원회 체제는 의사 결정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원장 체제에 비해 책임 한계가 모호하다는 의견이 법률 검토 과정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문예진흥원의 올해 지원사업은 이미 다 결정된 만큼 여야간 의견 조정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 다음 국회에서라도 처리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인들은 그러나 문학.미술.연극.무용 등 이른바 '기초 예술'의 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국회가 적극성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당사자인 문예진흥원은 "올해부터 문예진흥기금 모금이 폐지돼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환경이 바뀌었으므로 위원회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문예진흥원 강형철 사무총장은 "개정안은 예술가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민생법안'"이라며 "한시라도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예진흥원은 새 법을 통해 지난해 복권 수입금(1조2600억원)을 기준으로 6%선인 528억원 정도는 끌어와야 기초예술에 '지원다운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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