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동차100년史>12.미국의 유럽 공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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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 93년 가을 일본 지바(千葉)현에 있는 마쿠하리(幕張)전시장에서 국제자동차쇼가 열렸다.먼데일 주일미국대사와 그를 안내한 일본통산성의 와타나베 오사무(渡變修)기계정보산업국장간의 대화. 『대사는 이번에 출품한 미국자동차회사들의 제품이 어떻다고 보십니까』,『매우 훌륭하군요』,『이런 제품을 10년전쯤에 내놓았다면 지금과 같은 자동차무역마찰은 없었을 텐데요』.
와타나베국장이 『미국차가 이제야 일본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만한 수준이 됐다』는 것을 돌려서 표현한 말에 먼데일대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미일자동차협상에서 잘 나타나고 있듯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왜 유럽을 석권한 미제차가 일본에서 천대받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자동차회사의 유럽진출은 1911년 포드가 영국에서 T형차를 조립생산한데서 비롯된다.
포드의 유럽진출은 영국에서 시작해 1925년이후 독일(쾰른소재)로 확대된다.이탈리아의 피아트社와 프랑스의 푸조社도 이에 영향을 받아 대량생산방식을 배우게 된다.한발 더나아가 프랑스의시트로엥.르노는 유럽지형에 맞는 소형차를 개발하 게 된다.
포드와 GM은 유럽시장을 대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처럼 미국의 양사가 유럽에 진출,대량생산방식을 확대해가는 가운데서도 영국 롤스로이스와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는 고급차 지향으로 수공업에 가까운 유럽의 전통생산방식을 지켰다.
1929년 GM은 불황 속에서도 전후(戰後)배상 문제로 경영난에 빠진 독일 오펠社를 인수했다.1930년대초 히틀러의 나치스가 들어선 후 독일은 외국세 퇴치와 국민 1인1차운동을 계획,38년 폴크스바겐社를 세운다.독일이 처음으로 미 국세에 본격적으로 대항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미국과 독일의 자동차 생산전쟁은 맥빠진 게임이 되고만다.유럽은 전후 자유무역체제와 유럽공동체결성때까지 자동차산업에서 본격적인 성장의 기회를 갖지못했다. 미국은 사정이 달랐다.1929년10월 미국의 금융중심인 월街에서 발생한 경제공황(恐慌)의 여파로 1932년 연1백10만대 수준으로 떨어졌던 자동차생산대수가 1935년이 되면서 3백만대수준으로 회복됐다.
이 과정에서 중소자동차업체는 모두 도태되고 소위 빅3(GM.
포드.크라이슬러)만 남아 자동차산업 과점(寡占)상태가 굳어지게됐다. 혼다(本田)자동차창업주인 故혼다 쇼이치로(本田宗一郎)회장은 자동차산업에 진출할때 『나라경제가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니진출을 삼가라』는 정부의 행정지도에 맞서 『어려울때 투자해야 나중에 크게 거둘수 있다』며 강행했다.
미국의 빅3사례를 연구한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東京=郭在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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