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은 잠시 감정이 격해지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민우는 소설을 읽듯 상세히 얘기하고 편지를 줄줄 외는 채영의 기억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그래서 흥미롭게 그녀의 입을 바라보고 있는데 드디어 그녀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러나 그때 당신의 말을 듣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커다란 기쁨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소.죽음은 피할 수 없는 나의 길! 그렇기에 하늘은나에게 그토록 가혹한 운명의 짐을 짊어지게 한 것이오.나의 길을 걷는 것을 주저하면 주저할수록 현세는 고통으로만 점철될 뿐….그것은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가 된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소.그동안 억지로 가정에 붙어 있는 불행한 나의 모습은 아내나 자식 모두에게 도 움이 안됐던 것이오….사랑하는 채영,이제 나는 나의 물줄기를 따라 주저하지 않고 떠나려하오.당신과 함께 강물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포옹했던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오.그때 함께 죽었으면 좋으련만 당신에게는 또 당신 나름대로 풀어야 할 업이 있고 그 업에 내가 담당해야 할 몫이 있기에 아마도 우리는 구조됐나 보오.당신을 향한그리움을 억누르면서 보낸 지난 1개월! 그동안 나는 내가 공부한 정신의학의 지식을 당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나머지 내 생의 모든 시 간을 쏟았소.그리고 그 작업이 끝난 지금 그리운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는 바이오.당신을 한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었으나 아내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자식에 대한 의무를 던져버릴 것같아 찾지 않았으니 용서해 주오.그리고 행여 당신은 내 죽음에 일말의 책임도 느낄 필요는 없소.당신이 그때 한 얘기는 그순간까지 준비된 나의 죽음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일깨워 준 것에불과하니까….마치 피분석가가 스스로 거의 다 자기 문제를 깨달을 즈음 명료하게 의식화시켜주는,분석가의 해석(interpretation)의 타이밍을 당신이 차지한 것 뿐이오.당신이 노벨문학상을 꼭 받아야 하는 사연을 들었을 때 너무도 마음이 아팠소.아마도 그 남자는 당신을 현실에서 찾지 않아도 당신과의 사랑의 맹세를 잊지는 않을 것 이오.당신과 그 남자가 노벨상 수상식때 감명깊게 상봉하는 장면이 현세에서 이루어지기를…! 여기동봉한 것들은 내가 갖고 있는 정신과 책들과 당신이 이해하기 쉽게 다시 정리한 정신의학의 지식들이오.당신의 문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오.그리고 이 편지 말미에 적은 사람들은내 학문의 지기들이오.그들의 학문적 특성 과 전문분야를 적었으니 당신의 작업에 참고하기 바라오.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청하면 아마 기꺼이 도와줄 것이오.그들이 당신을 신뢰할수 있게끔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함께 동봉하니 당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 시오.안녕,내 사랑!저승에 가서라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다….
당신의 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