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맛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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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제오리를 연잎에 싸서 대나무 찜기에 쪄냈다. 경남 진주의 '연리'에 가면 맛볼 수 있다. 유지상 기자

“연(蓮)은 연(因緣)을 낳는다.”

한성디지털대학교 호텔경영학과 김미자 교수는 연 예찬론자다. 처염상정(處染常淨·더러운 진흙에서 피지만 그 향기는 항상 청정하다)의 이미지를 가진 연에 반해 전국의 연 군락지를 찾아 다녔다. 그곳에서 하나 둘 좋은 인연을 얻었고,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낳았다.

자연스레 연으로 만든 음식을 만날 기회도 많았다. 연씨로 만든 연자죽과 연자밥, 연잎이나 연뿌리를 갈아 만든 연칼국수, 최근엔 연근 분말을 이용한 연삼겹살구이까지. 그가 맛본 연 음식의 세계는 깊고 넓다. “동쪽으로 가면 연육개장이 있고, 서쪽엔 연김치도 있다”고 말한다.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연음식전문점도 훤히 꿰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 김 교수와 함께 강화도로 연 맛 나들이를 했다. 거기서 강화 선원사의 주지 성원 스님을 만났다. 절에서 손수 연을 재배하며, 연을 이용한 식품과 메뉴 개발에 열정을 쏟고 있어 ‘연 대사’로 통하는 분이다.

“연 씨의 연(蓮)자는 한자의 ‘이을 연(連)’과 그 발음이 같아서 예로부터 ‘연밥을 많이 먹으면 자손을 많이 낳는다’는 말이 있어요.” 성원 스님의 얘기다.

“동의보감 등 옛 의학서에선 허혈을 풀어주고, 신선한 피를 생기게 하는 것으로 적혀 있어 약식동원(藥食同源)의 대표라 할 만하다”고도 했다. 김 교수와 성원 스님이 연 음식 맛있는 집을 소개한다.

정리=유지상 기자



삼겹살·칼국수·훈제오리… ‘연 요리 명가’

◇연 매운 갈비찜= 상호에 ‘연’을 자신만만하게 넣었다. 메뉴판도 마찬가지다. 연 매운 갈비찜·연 등갈비찜·연 냉면에 연 삼겹살까지 모두 연이 앞에 붙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연 삼겹살(1인분 8000원). 생고기 삼겹살에 생 연근을 곁들여낸다. 삼겹살 위에 말린 연근 가루를 듬뿍 뿌려낸다. 구이 판에 삼겹살을 올렸는데 기름이 튀지 않고 흘러내리지도 않는다. 연근 가루가 쏙쏙 빨아들이는 것이다. 연기도 거의 없다. 역시 연근 가루 덕이다. 고기 한쪽 면을 익히고 나면 뒤집어 다시 연근 가루를 뿌린다. 잘 익은 삼겹살을 한 점 입에 넣었다. 다른 삼겹살보다 육질이 무척 부드럽다.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도 느끼지 못할 정도다. 양념 맛을 더하기 위해 참기름장을 찍거나 쌈장을 바를 필요도 없다. 상추쌈도 달갑지 않다. 새우젓으로 살짝 간만 맞춰 먹으니 고기 줄어드는 속도가 빠른 게 ‘애교 있는’ 단점이다. 선원사 근처. 032-932-0376.

◇연 팔팔 숯불장어=강화도 특산물로 꼽는 강화 갯벌장어가 주특기인 곳. 갯벌장어는 육질이 쫄깃하고 지방이 적어 느끼하지 않다. 주방에서 애벌로 구워낸 장어를 식탁에서 다시 구워먹는데 연근 가루를 솔솔 뿌려가며 구워준다. 연근 가루가 장어의 기름을 빨아들이며 함께 익어 구수한 맛이 더하다. 생 연근도 같이 구워 장어와 연근의 아삭한 맛을 번갈아 즐길 수 있다. 깔끔하게 구워 한약재가 들어간 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방법과 매콤한 고추장 소스를 발라 굽는 방법이 있다. 장어 맛을 제대로 보려면 소금만 뿌려서 굽는 게 낫다. 백김치·물김치·배추김치 세 가지 김치가 나온다. 모두 연근을 넣고 담아 아삭아삭 씹힌다. 장어를 먹고 나면 연근가루를 넣어 만든 장어 국으로 식사를 한다. 후식으로 나오는 연잎차나 연근차는 빵빵한 배 속을 차분하게 달래준다. 갯벌장어 1㎏에 7만원. 강화대교 건너 더리미 장어마을 내. 032-932-8881.

◇두물머리 연칼국수=연칼국수·연자밥·연잎 장아찌 등 다양한 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주메뉴는 연 칼국수(6000원). 연잎·연근·연씨를 각각 곱게 갈아 밀가루 반죽해 세 종류의 면을 뽑았다. 이것들을 섞어서 바지락·홍합·오징어 등 해산물로 우려낸 국물에 삶았다. 호박·당근·버섯류도 푸짐하다. 국수는 약간 씁쓸하고 텁텁하지만 밀가루 국수의 단순함을 넘어선 맛이라 즐겁다. 연잎에 싸서 대나무 찜통에 담겨 나오는 연밥(3개에 6000원)은 벗겨 먹는 재미가 있다. 양평의 찹쌀에 연자(연씨)와 은행·밤·수수·잣 등과 함께 보기 좋고 먹기 좋게 연잎에 쌌다. 베어 먹을 때 연잎 향이 살짝 입에 감긴다. 연근에 수삼과 호두 등을 넣어 만든 연저육찜(2만5000원)은 술안주로 좋고, 연근과 버섯을 넣어 얼큰하게 끓인 연근버섯 육개장은 속풀이에 좋다. 경기도 양평 국수역 인근. 031-774-2938.

◇연리=경남 진주의 강주연못 앞에 있는 연요리 전문점. 훈제오리를 연잎에 싸서 대나무 찜기에 익혀낸 연잎 훈제 오리찜이 인기다. 훈제하면서 기름기를 쪽 빼고 찜기에서 다시 한번 기름기를 뺐다. 다이어트 미용식이란 생각에 여성 고객들이 즐겨 찾는단다. 어른 4명이 먹을 수 있는 ‘대’크기가 4만원. 연씨·녹각·대추·황기·당귀·구기자·엄나무·오가피 등의 한약재와 흑임자·흑미·녹두 등 각종 씨앗을 첨가한 보양 메뉴인 약선 오리백숙(4만원)은 남성 매니어층이 탄탄하단다. 식사 메뉴로 연잎과 뿌리로 만든 면을 녹두 육수에 말아낸 연잎 녹두국수를 많이 찾는다. 단품으로 주문할 경우엔 5000원인데 오리요리 먹고 시키면 양을 적게 해서 3000원만 받는다. 055-744-5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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