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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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여자는 힘있는 남자에게 끌린다.
「힘」으로 상징되는 존재가 남자인 탓일까.
「사내 남(男)」이란 참 재미있는 한자(漢字)라고 길례는 여겨왔다. 「남(男)」은 「밭 전(田)」밑에 「힘 력(力)」을 써넣은 글자다.「전(田)」은 「사냥할 전(田)」이라고도 불린다. 밭갈이하는 힘,사냥하는 힘이 곧 사나이인 것이다.
밭갈이.사냥은 태초에 있어 생활의 수단이었다.생활하는 힘,즉생활력이 있어야 사나이일 수 있다는 생각이 여기엔 깔려 있다.
생활력이 없으면 남자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체력(體力) 지력(知力) 금력(金力) 권력(權力)….
힘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금력과 권력을 낳는 것이 체력과 지력이다. 체력과 지력의 조화로 차지하는 금력과 권력.여자들은 그래서 금력과 권력에 하잘것 없이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는가.
역신과 어울린 처용의 아내.
임금과 어울린 도화녀.
모두 권력과의 동침이다.
처용의 아내나 도화녀에게 길례가 선선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아리영 아버지에겐 권력이 없다.금력도 두드러질 만큼은 없다.그러나 체력과 지력이 있었다.
그 힘이 길례를 사로잡았다.
처용의 아내나 도화녀도 권력 자체보다는 그 권력을 낳은 체력과 지력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역사 책은 체력과 지력을 갖춘 남자들의 이야기로 태반이 채워져 있다.『삼국사기』나 『삼국유사』도 마찬가지다.
도화녀가 낳은 비형랑(鼻荊郎)도 그런 남자 중의 하나였다.
비형랑은 신라 왕궁 월성(月城)에서 살고 있었지만 밤마다 성벽을 날아 넘어 황천(荒川)언덕에서 도깨비들과 같이 놀았다.
진평왕은 병사 50명을 시켜 비형을 지켰으나 말리지 못했다.
임금이 물었다.
『네가 도깨비들을 데리고 논다니 사실이냐?』 『그렇습니다.』『그럼,그 도깨비 무리를 부려 황천 옆의 개천에 다리를 놓도록해라.』 비형은 도깨비들을 모아 하룻밤 사이에 돌다리를 놓았다.그런 까닭으로 그 다리를 「귀교(鬼橋)」라 불렀다.
임금이 또 물었다.
『도깨비 중에 정사(政事)를 돌볼만한 자가 없겠느냐?』 『길달(吉達)이란 자가 좋을 것 같습니다.』 길달은 궁중에서 일하게 됐으나 어느날 여우가 되어 달아나버렸다.비형은 도깨비 무리를 시켜 그를 잡아 죽였다.그 후 도깨비들은 비형이란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고 한다.
비형랑과 도깨비 무리는 제철(製鐵)세력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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