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 바슐라르 연구서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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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국내 문학이론가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끼친 프랑스의 철학자이며문학이론가인 가스통 바슐라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서가 나왔다.
불문학자인 곽광수(54.서울대 불어교육과.사진)교수가 20여년에 걸친 연구끝에 첫 저작으로 내놓은 『가스통 바슐라르』(민음사)는 바슐라르 연구서의 결정판으로 꼽을 만하다.
곽교수는 76년 故김 현교수와 공저로 『바슐라르 연구』(민음사)를 냈으나 김교수와 바슐라르 해석에 대해 이견을 보여 92년 『문예중앙』에 김교수의 바슐라르 오독을 지적하는 글을 발표해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이번에 내놓은 『가스통 바슐라르』는『바슐라르 연구』에 실린 논문 「바슐라르와 상상력의 미학」을 그대로 싣는 한편 김교수의 바슐라르 해석을 비판한 「외국문학 연구와 텍스트 읽기」,바슐라르 이론을 적용한 평문들을 함께 실어 바슐라르의 이론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바슐라르가 현대지성사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크다.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앙리 루이 베르그송과 함께 현대철학의 발원지로꼽힐뿐 아니라 프랑스 인식론자 절반이상을 영향권에 두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때문에 그의 정신적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철학과 문학이론의 밑그림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바슐라르는 처음에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철학자로 출발한다.그러나 그는 객관적 앎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상상력에 주목한 바슐라르는 과학에서조차객관적인 진리는 없으며 인간이성에 의해 구성될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이후 바슐라르는 상상력 연구에 몰두하면서 문학연구가로 변신한다.37년에 내놓은 『불의 정신분석』에서부터 사망 1년전에 출간한 『촛불의 시학』(61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상상력연구를 통해 바슐라르는 『상상력은 그 자체의 고유한 법칙을 갖고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편다.곽교수는 바슐라르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보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원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상상력은 이 원형을 향해가는 정신의 자체적인 힘이지요.때문에 원형과 외계의 사물 사이에 놓인 상상력은 끊임없이 사물을 원형에 가깝게 변형시키려는 관성을 갖게 됩니다.상상력 연구와 관련된 그의 저서들은 이 원형에 다가가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슐라르가 상상력을 심리적.사회적 요인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그 자체에존재론적인 지위를 부여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미셸 푸코의 담론,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움베르토 에코의 기호등 전통적인 의식철학의 주체- 대상의 이분법을 넘어 제3의 공간을 설정하려는 현대철학의 모든 시도는 바슐라르의 상상력 연구에 빚진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곽교수는 『요즘의 우리나라 평단은 외국의 문예이론들이 제대로소화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소개되는 바람에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바슐라르도 그중 한명』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연구서는 바슐라르 사상중에서도 상상력 연구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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