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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과도한 자신감은 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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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러시아 경제는 확실히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각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 전망도 그 어느 때보다 밝다. 그러나 과도한 자신감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장기적인 문제점을 간과했을 뿐만 아니라 가시화된 안보 위협에 대해 불필요할 만큼 폭력적인 대응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서방 간 관계는 물론 궁극적으로 러시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러시아가 잘나갈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현재의 국제 정치·경제 상황에서 볼 때 세 가지 요인, 즉 석유·무기·핵기술이 러시아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또한 빠르게 증가하는 소비 계층은 상품·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촉발시켜 외국 기업에 수익을 올릴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선지 최근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투자가들은 모든 면에서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안고 있다. 보건 시스템은 여전히 엉망이다. 곤두박질치는 출생률과 평균수명으로 21세기 중반께 러시아 인구가 30%나 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에야 이 추세를 늦추기 위해 재정지출을 급격히 늘렸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들이 러시아의 단기적 성장을 저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현재의 7% 성장률을 넘어 중국처럼 두 자릿수 성장률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자신감이 러시아로 하여금 외국 투자가들이 중요시할 장기적 문제들을 도외시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국제투명성기구(TI)는 지난해 러시아의 반(反)부패 순위가 179개국 중 143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사법제도에 대해 국제사회는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또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은 세금을 정치·사업적 경쟁자와의 원한을 푸는 무기로 휘두른다. 금전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기업인을 살해하는 일도 그 어떤 신흥 시장에서보다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나 러시아의 자신감이 불러온 더 큰 위험은 호전적 외교정책이다. 이는 미국·유럽연합(EU) 및 주변국과 모스크바 사이에 끊임없는 갈등을 초래한다. 유럽 재래식 무기 감축협정(CFE)의 이행 중단,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한 유엔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 방어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대한 맹렬한 반대 등 러시아의 최근 행보만 꼽아봐도 그렇다. 그뿐이 아니다. 러시아·영국 간에 지루한 간첩행위 공방이 벌어져 냉전시대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더니, 러시아 관료들의 방해로 임박한 대선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없게 됐다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지난해 여름엔 에스토니아에서 정부·은행·언론기관의 웹사이트에 러시아가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다는 비난이 불거지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그루지야 간 관계도 긴장감이 팽배하다.

현재 러시아는 과거 중국이 대만에 그랬듯 지나칠 만큼 민감한 태도로 주변국을 대하고 있다. 지난 세대의 중국처럼 모스크바 역시 경제 성장과 국제사회 속 위상에 대해 보다 확고한 자신감이 생기면 좀 더 유연한 자세를 갖게 될지 모르겠다.

이언 브레머 국제정치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그룹 대표
정리=신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