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DVD 전쟁 다음 라운드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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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34면

차세대 DVD는 21세기 ‘디지털 거실의 꽃’으로 불린다. 그 제품의 표준을 정하는 규격(format) 전쟁에서 소니(SONY)의 블루레이(Blue-ray) DVD가 도시바(東芝)의 HD DVD를 마침내 눌렀다. 도시바는 19일 HD DVD 관련 제품의 신규 개발 및 생산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소니 입장에서 1980년대 VCR 규격전쟁 때의 베타막스 참패를 설욕하는 통쾌한 복수인 셈이다.

올 연초 할리우드의 큰손인 워너 브러더스가 도시바를 배반하고 소니의 손을 높이 들어줄 때까지만 해도 싸움은 팽팽해 보였다.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드림웍스가 HD DVD를 지지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소니의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에 맞서 X박스360에 HD DVD를 표준으로 채택한다고 도시바를 껴안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블루레이와 HD DVD를 모두 볼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재생기)를 이미 개발해 차세대 규격이 어느 쪽으로 결정되어도 별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2월 들어 월마트와 베스트바이 타깃 등 굴지의 유통업체들이 앞으로 블루레이 DVD만 취급한다고 속속 반기를 들면서 판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HD DVD의 운명이 해당 기술기업들이 아니고 제품을 취급하는 대형 유통업체들 손에서 결단 난 것이다.

20여 년 전 베타막스 패배는 ‘기술 우위가 곧 시장에서 승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뼈아픈 교훈을 소니에 안긴 바 있다. 당시 베타막스는 라이벌 VHS보다 기술에서 한 수 위였지만 시장에서 VHS 규격이 더 많이 유통되고, 소비자 또한 많이 팔리는 규격을 선호하면서 VHS가 VCR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바의 니시다 아쓰토시(西田厚聰) 사장은 기술 면에서 우위성은 변함없지만 더 이상 계속할 경우 시장이나 소비자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될 것 같아 고뇌의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도시바의 HD DVD는 현행 DVD 기술을 발전시킨 것으로 조작이 쉽고 가격이 저렴한 특장이 있다. 도시바는 지난 2년 동안 수억 달러를 쏟아 부었고 지금까지 판매한 기기는 북미지역의 60만 대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100만 대에 달한다. 도시바는 기존 구입자에 대한 애프트서비스를 위해 콜센터를 계속 유지하고 수리용 부품 8년분을 확보한다고 약속했다.

베타막스 참패 당시 소니는 제품 생산을 완전 중단하는 데 근 10년이 걸렸다. 이 때문에 기술기업을 골병 들이고 소비자를 괴롭히는 규격전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는 물음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블루레이는 HD DVD와는 차원이 다른 기술이고 기억용량도 디스크 한 장당 25기가바이트로 훨씬 크지만 값은 배 정도 비싸다. 따라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기억용량에 값도 비싼 블루레이가 과연 소비자에게 바람직한 규격이냐는 문제제기가 잇따른다.

소니는 베타막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콘텐트를 제공하는 할리우드 영화사들 포섭에 공을 들였고 전체 영화사의 70%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1988년 CBS 레코드, 89년 컬럼비아영화사 인수 이후 쌓아 온 산업 커넥션이 큰 힘을 발휘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기존의 하드웨어가 금세 낡은 것이 되는 오늘의 기술세계에서 소니의 ‘통일천하’ 또한 보장이 없다. VTR이 DVD에 밀려났듯이 블루레이 DVD도 인터넷으로 고화질 영화를 다운받는 웹 다운로드에 언제 밀려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21세기 디지털 거실의 꽃을 피울 DVD 규격전쟁은 또 다른 라운드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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