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자유사상으로 ‘수절’한 현대 중국의 지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진인각, 최후의 20년
육건동 지음
박한제·김형종 옮김
사계절, 819쪽, 3만9000원

천인커(陳寅恪·1890-1969).

국내에선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중국에선 ‘교수들의 교수’로 평가받는 중국의 ‘국학대사(國學大師)’다.

그는 중국에서 최후의 고전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천산리(陳三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 고전에 빠져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12세에 일본을 시작으로 16년 간 서구 유학을 통해 익힌 언어만 20종이 넘는 등 동서문화를 겸비한 대학자였다.

기억력 또한 비상했다. 조교에게 필요한 자료를 찾아오라고 시킬 때는 언제나 어느 책 몇 쪽에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이는 십중팔구 들어 맞았다. 그는 인생에서 몇 가지 큰 선택을 했다. 1927년 쇠락하는 문화에 대한 연민 끝에 자살을 택한 국학자 왕궈웨이(王國維)와 달리, 그는 오히려 왕궈웨이의 기념비명을 지으며 죽음 대신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다졌다. 또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의 패색이 짙어짐에 따라 1948년 후스(胡適)가 미국행을, 푸스녠(傅斯年)은 대만행을, 궈모뤄(郭沫若)는 베이징행을 각각 선택할 때, 이미 시력을 잃은 그는 “왜 하필 부모의 땅을 떠나느냐”라며 광저우로 향했다.

이후 베이징의 ‘공산 왕조’는 그에게 중고사(中古史·중세사)연구소 소장을 맡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미 삶과 죽음을 초월해 ‘독립정신과 자유사상’을 신봉하는 학자였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맡을 연구소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지 않으며, 정치학습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마오쩌둥이 허락 증명서를 내준다면 기꺼이 부름에 응하겠다는 조건을 걸 정도로 기개가 높았다. 그는 생전에 단 한마디의 정치적 발언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금중외(古今中外)의 풍부한 문화와 켜켜이 쌓인 역사가 한 몸에 응집된 문화적 거장이었다.

역사가로서 그는 역사 문제를 볼 때 종(縱)의 방향으로 보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현상으로부터 본질로 파고 들어가 신선하면서도 남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고, 전혀 예상을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해석을 내리는 천부적인 역사가였다.

“사대부 계급 중에는 어진 자(賢者)와 어리석은 자(不肖子), 서투른 자(拙者)와 약사빠른 자(巧者)의 구분이 있기 마련이다. 어진 자와 서투른 자들은 늘 고통을 느끼다가 결국 나중에는 소멸돼 버린다. 반면 어리석은 자와 약삭빠른 자들은 대부분 향락과 부귀영화를 누리며, 신분 상승으로 명예를 떨치기도 한다”는 변환 시대의 지식인 군상에 대한 그의 평가는 마치 지금의 우리를 꾸짖는 듯 하다. 서른 여덟 책벌레와 결혼해 눈먼 학자 옆에서 반려자 역할을 하며 동시에 저술 활동을 도왔던 부인 탕윈(唐<7BD4>)과 나눈 순애보 또한 눈물 겹다.

이 책은 저자 루젠둥(陸鍵東)이 수많은 자료와 고증을 통해 천인커가 중국의 공산화가 분명해졌음에도 해외로 떠나지 않고 대륙을 선택한 1948년부터 69년 사망할 때까지의 20년을 재구성한 것이다. 95년 이 책이 중국에서 첫 출판됐을 때 전 대륙이 ‘천인커 신드롬’에 빠져들 정도로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의 유려한 미문(美文)과 수많은 시구를 섬세한 역주로 풀어낸 역자 박한제·김형종 교수의 수 년에 걸친 번역작업은 이웃나라의 후학이 대학자에게 드리는 애정의 표시인 듯하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