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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꿈, 킹 목사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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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바마는 중앙 정계 데뷔 무대라 할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기조연설에서 삼대(三代)에 걸친 가족사를 들춰내 보였다. 그의 부모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었다고 했다.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이기에 아프리카식 이름 ‘버락’이 성공에 결코 장애가 되지 않을 거라 여겼다 했다. 오바마도 그런 부모가 물려준 ‘다채로운’ 혈통에 감사한다고 했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와 상원의원을 거쳐 미국 대선 후보까지 이른 노정만 보면 그 믿음이 헛되지 않은 듯도 하다.

하지만 외가가 있는 하와이에서 보낸 어린 시절, ‘버락’ 대신 미국식 이름 ‘배리’를 내세웠어도 그는 남다른 피부색만으로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검둥이’라 놀리는 급우에게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뜨렸고, 맘에 드는 백인 소녀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10대 때 술과 마약에 빠진 것도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방황은 길지 않았다. 20대 청년 오바마는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였고, ‘버락’이란 이름을 당당히 되찾았다.

그러나 대선 가도에서 그 이름은 잦은 트집거리가 됐다. “오바마는 이슬람교도”란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부러 ‘오사마’(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라 잘못 부르는 이도 나왔다. ‘이슬람교도=테러리스트’란 평균적 미국인들의 편견을 노린 네거티브 공세였다. 피부색도 여전히 걸림돌이다. 설문조사를 하면 백인들마저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고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지만 노예제가 폐지된 지 1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사회 구석구석에 흑백차별이 엄존하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흑인 후보에 우호적인 조사 결과도 속내야 어떻든 밖으론 “나 인종차별주의자 아니야”라 알리고 싶은 이중성에 기인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래서 승기를 잡은 오바마가 여세를 몰아 민주당 후보로 낙점된다 한들 본게임에선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을 이길 수 없다는 예측이 적잖다. 재주만 열심히 넘고 돈은 딴 사람이 챙길 판이라는 거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걸 신조로 살아가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 나와 내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아가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속엔 인종차별의 족쇄를 풀고자 하는 절절한 열망이 담겨 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오바마에게도 꿈이 있다.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아닌, 진보적인 미국도 보수적인 미국도 아닌 하나의 미국을 만들겠다”는 담대한 희망이다. 흑백 평등을 염원한 킹 목사의 꿈을 넘어 흑백 화합을 주창하는 한층 더 진화한 모양새의 꿈이다.

‘동화’니 ‘사기극’이니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오바매니어(오바마 열풍)’에 달뜬 걸 보면 그의 꿈을 믿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아니, 팍팍한 현실에 지친 숱한 이들이 믿기지 않는 그 꿈을 믿고 싶은 것 같다. 킹 목사의 꿈은, 오바마의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올해 미국 대선의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다.

신예리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