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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정치 접목' 새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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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지난달 27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 국제회의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정기총회에 앞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학기술인 시국선언'은 다소 엄숙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과학기술인의 다짐'과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낭독하는 동안 700여명의 참석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선언문이 채택되는 순간만큼은 우뢰와 같은 박수로 시국선언을 통과시켰다.

시국선언의 요구사항은 ▶국가경쟁력 강화 특별법 제정▶비례대표의 30% 이상을 남녀 과학기술인에게 배정▶국회에 과학기술정책 전담기구 설치.운영▶초.중.고 과학교육 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 강구▶과학기술전문가의 공직진출 확대계획 조기 실천▶과학기술부총리 제도 실현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국가 대형국책사업의 정책결정에 과학기술인 참여제도화 등 7개항이다.

무엇보다 강조된 항목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에 다수의 과학기술인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등 적극 참여한다는 다짐이다. 바야흐로 과학기술계에 '총선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오나=나도선(울산의대 교수) 여성과학기술인 연합회장은 최근 열린우리당에 입당원서를 내고 비례대표 배정을 요청했다.

특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발걸음이 빠른 편이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광호 한세대 교수도 열린우리당 공천을 신청했다.

김선배 현대정보기술 사장(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과 이성만 마크로테크놀로지 사장이 각각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을 준비 중이다. 한국무선인터넷협회 이재영 고문도 열린우리당에 입당, 비례대표 이공계 출신 몫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고 윤진호 인터링크 사장도 출사표를 던졌다.

대덕연구단지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선급 수석연구원 출신의 여인철 박사, 한국원자력연구소 출신의 이병령 전 유성구청장, 이성우 과학기술노조 위원장의 출마가 예상된다.

◆과학기술 정치인으로서 적임자는 누구=각 정당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과학기술계 스타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 최연소 박사로 통하는 윤송이 와이더댄닷컴 이사에게 영입을 제의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건지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는 열린우리당에 입당, 용산구 공천이 검토되고 있다.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스타'로 떠오르자 일부 정당에서는 '황우석 교수 모시기'에도 나섰다. 이에 대해 황교수는 "터무니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실험실을 지키며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사실을 분명히했다.

그러나 황교수는 보다 많은 과학기술인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소신 또한 분명하게 밝혔다. 황교수는 "과학기술계와 사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국회에 나가 과학기술계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황교수는 "무늬만 이공계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개인적인 영달을 목표로 하는 이공계 출신 정치인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황교수는 "의사 출신의 IT 기업인인 안철수 대표가 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완강하게 거절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깨끗한 이미지에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지식, 그리고 특정 분야에서 자아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적격이라는 것이다.

◆예상되는 걸림돌=정당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여성표를 의식, 지역구 의석의 30%와 비례대표 의석의 50%를 여성계에 할당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과학기술계에 일정 비율을 할당하겠다는 정당은 아직 없다.

한글과컴퓨터 사장을 지낸 이찬진씨가 1996년 신한국당에 영입돼 전국구 배지를 달았지만 6개월도 안 돼 사퇴한 예에서 보듯 정치감각이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인 탓이다.

'생명공학육성법', '항공우주산업촉진법', '국가기술공황 예방을 위한 이공계 지원 특별법' 등 다수의 과학기술 관련 입법을 성사시킨 이상희 의원이 4선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배제된 사실 또한 과학기술인의 국회 진출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한다.

생산기술연구원 이강원 박사는 "중국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과학기술인들이 정계에 다수 진출해야 지식경쟁시대에 걸맞은 의정활동이 가능할 것"이라며 "사회전체에서 불고 있는 이공계 살리기도 한층 힘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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