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21>4.人性교육 틀 바꾸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의식이 혼돈된 이 사회에서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국가경영전략연구원과 中央日報.MBC가 공동주관하는 「대전환 21」 연중기획은 이번 회에 「인성교육의 틀을 바꾸자」를 다루며 제1주제(교육)를 마감한다.전문가가 참여한 세미나를 통해 도출된 인성교육대전환의 전략을 국제경영전략연구원 김재희(金在嬉)연구원의 대표집필로 싣는다.아울러 핵심 쟁점에 대한 다른 의견도 소개한다.
사회가 어수선하다.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타락이 극에 달했다고걱정한다.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고 한국인들은 외국에서도 온갖 추태로 망신을 당한다.부조리와 폭력이 번지는 우리의학교.가정.사회.성숙한 사람들이 성숙한 사회를 꾸려갈 길은 멀기만 하다.
이토록 혼란스럽고 불만스런 사회에서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갈아이들의 인성교육을 논하고 있다.변화하는 세계,변화하는 질서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야 할 것인가.
어떤 이들은 우리 사회의 물질숭배 현상을 탓하면서 명심보감(明心寶鑑)과 같은 고전을 찾아 도덕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과연 아이들이 명심보감을 읽을 기회를 갖지못해 인성이 문제일까.아니면 그보다 앞선 우리 기성세대들이 혼돈 속에서 고수하는 전통가치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우리 전통사회는 조선 5백년동안 엄격한 유교 질서의 틀 속에서 살아왔고 이 규범은 무척 쓸모가 있었다.상하가 유별(有別)해 위계질서가 철저히 지켜지는 권위 중심의 통제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행복하진 않았을지라도,적어도 그 권위는 사 회의 정체적질서를 충분히 통제하는 구실과 명분이 분명한 것이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가치를 희생하도록 강요받는 권위주의는 일제시대를 거쳐오면서 그 뿌리가 굳어져왔다.
광복과 더불어 민주공화국이 됐는데도 우리는 급격한 산업화와 분단의 상황아래 이데올로기에 발목이 묶이면서「윗분」한테 권위를양도한채,집단의 이익을 위해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풍토에서 살아왔다.
그 결과 사람들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들고 「윗분과 아랫것」의 불평등한 관계에 불만을 품은채 민주사회를 지키는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인간관계를 배우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학교에서도 독립된 인격으로 존중받으며 자율적인 개체로 민주시민의 대우를 받으며 인간관계를 배우는 기회를가지고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렇듯 우리는 전근대적인 옷을 벗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농경사회.산업사회,그리고 정보사회의 요소들이 마구 혼재된 채 말 그대로 혼돈의 늪을 헤매고 있다.노트북과 휴대폰을 들고 온세계를 누비면서도 윗분 앞에서 감히 「아니오」라고 하거나 따져서는 안된다.남자는 여전히 주먹도 좀 휘두르고,여자는 양보와 희생을 하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당면한 인성문제는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과거의 가치가 강요하는 사고의 틀에 대한 분석과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우리의 인성문제는 근본적으로 오늘날 변화하는 사회에 걸맞지않은 사고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사실조차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환기의 신세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율」의 능력을 심어주는 대신 기죽이지 않게 기른다고 이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데도방치한다.「윗분」될 준비 시키느라 과잉보호한다.前세대와 양상만다를뿐 과잉보호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역시 독 립된 인간이 아니라 부모의 소유물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성찰하고,결정하며 자기표현을 하는데 미숙할 뿐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입장의 다름을 존중하고 시비를 합리적으로 따지는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러면 과연 21세기의 세계를 선도할만큼 창의롭고 자율적인 아이들,말이나 행동에서 폭력을 남용하지 않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전통에서 도덕성을 회복하자」고 강조하는 도덕적 복고주의를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의 윤리철학으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산업사회를 벗어나 이미 정보화 시대로 들어가는 이 사회에 적합한 사람은 더 이상 상명하복(上命下服)에 충실 한 국민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율적 민주시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얼굴은 무척이나 불만스럽다.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새로운 인간관계의 정체성을 결정하지 못한채,양식있는 민주시민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을 권위와 동일시하는 「윗분」들과,눈치로 어른을 섬겨야하는 「아랫것」들의 갈등이 부닥치기 때문이다.공동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쳐온 산업사회는 이른바 제로 섬(Zero Sum)의세상으로 누군가 재화를 얻는 것만큼 누군가는 잃는 것이었다.그러나 교통과 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이 특징인 미래의 정보사회에서는 정보를 다른 사람과 나눈다고 잃는 것이 아니 라 남과 나눈만큼 그 효용이 늘어나는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의 세상이 될것이다.상호 의존.협조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이익이돌아 갈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시대맞는 옷 입자 우리는 이 시대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권위 중심의 위계질서를 고수하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도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시대에 접어들었다.특히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탈바꿈하면서 사회는 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요구하며,사람간 관계는 더욱 더 수평적인 질서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권위와 눈치가 지배하는 곳에 자율과 창의는 자라지 못한다.우리사회의 도덕성은 결코 몇권의 훌륭한 도덕교과서로 회복되지 않을것이다.엄청난 속도로 탈바꿈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의 근본모순을 보다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이다.우선 스스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권위를 얼마나 남용하는지,또 거기에 반발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깨닫는 일이 21세기를 향한 대전환적 「인성교육」의 첫걸음이다.

<김재희 국가경영전략硏 연구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