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바흐 음반, 뭘 들으면 좋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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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디 앨런 감독의 2004년 영화 ‘멜린다 앤 멜린다’를 보면 주인공들의 삼각관계가 시작되는 장면이 나온다. 피아노 앞에 앉은 주인공(클로에 셰비니)은 묘한 분위기의 다단조 곡을 연주하면서 친구의 애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빠른 리듬이 감각적이다. 바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1권 2번 중 전주곡이다.

평균율은 각 권에 24곡씩 모두 두 권으로 돼있다. 모든 피아니스트가 한번쯤은 연주하는 곡이다. 그중에서도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녹음이 최고 중의 하나로 꼽힌다. 까다롭게 연주 곡목을 고르는 그가 한 음 한 음을 고르는 연주는 LP 시절부터 사랑받아 왔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한니발’에 흐르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는 폐부를 찌르는 섬뜩함이 서려 있다. 연쇄살인범 렉터 박사는 끔찍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펼쳐놓은 채 이 변주곡의 아리아를 연주한다. 글렌 굴드의 연주로 유명한 이곡은 바흐의 만년을 결산하는 걸작이다. 머레이 페라이어, 안드라스 쉬프 등의 연주도 호평을 받았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골드베르크가 지겹다면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 연주도 들어볼 만하다. 반다 란도프스카의 하프시코드 연주는 날카롭고 정확한 소리가 특징이다.

좀 더 밝고 쾌활한 느낌을 원한다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제격이다. 고풍스러운 축제의 분위기를 내는 바흐의 필청(必聽) 음악이다. 모두 6곡으로 된 이 곡은 곡마다 악기 편성이 달라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이무지치 합주단은 이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명랑하게 연주하며 쳄발로 연주자 트레버 피노크는 능수능란한 완급조절을 보여준다. 조금 느긋하게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싶다면 레온하르트가 옛 악기를 사용한 녹음도 좋다.

바흐 종교음악의 대표곡인 마태수난곡의 명반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마태복음 26·27장을 텍스트로 해 작곡된 곡이다. 58년 칼 리히터의 녹음에 이어 마우에르스베르거 지휘의 70년 녹음이 명반으로 꼽혔다. 요즘에는 벨기에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의 군더더기 없는 99년 녹음이 인기가 높다. 약간 빨라진 템포로 과장을 줄여 해석하며 무엇보다 청아한 음색의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가 음반을 빛낸다. 이렇게 작품과 음반을 고르는 작업이 번거롭다면 음반사에서 선곡해 내놓은 바흐 전집 시리즈를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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