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共助삐걱 경수로 줄다리기 따돌리는 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에 제공할 경수로의 형태를 둘러싸고 난항이 거듭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형 경수로를 제공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이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해 제네바협상때부터 시작해 올해 3월초 KEDO 결성,그리고 베를린 경수로 전문가 회의에 이르기까지 북한에제공될 경수로는 한국형이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그동안 철석같이 믿고 있던 미국이 최근들어「한국형 경수로」에서 후퇴하는 인상을 보이는가 하면,KEDO의 상임회원국인 일본마저도 경수로 협상으로 민감한 시점에 북한과의 수교 협상을 재개하고 나서 한국의 외교적 고립 을 부채질하고 있다.특히 미국이 일본-북한의 수교협상을 환영하고 경수로협상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원군」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한국을 소외시키려는 것 같은 의도까지 드러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유수한 언론들을 필두로『경수로가 꼭 한국형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로버트 갈루치 美국무부 핵담당 대사가『실질적으로 한국형이면 명칭에는 구애받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미국측의 의중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 크리스틴 셀리 美국무부 대변인도 한국형을 고집하는 한국정부에「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정부에 알리지 않은채 북한의 요구사항을「경청」해온 것으로 파악된다.지난해 경수로 협상과정에서 경수로 건설을 위해 북한에 들어가는 한국인 기술자가 전체 인력의 35%가 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나 북한에 가는 기술자 의 최고 책임자는 미국이 맡아야 한다는 것 등이 북한의 요구로 미국이 수용한 것으로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북한은 또 경수로 제작회사를 미국의 컴버스천 엔지니어링사나 웨스팅하우스사 등으로 하자는 구체적인 타협 안도 미국측에 제시했으며,미국은 이를 진지하게 검토해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번 베를린 경수로 전문가회의에서는 북한이 한국형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한국정부가「수용하기 어려운 10가지조건」을 제시했고,미국은 이를「새 방안」으로 검토하기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경수로협상과 대북(對北)수교협상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그리고 일본까지도 교감을 넓혀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점점외교적인 지렛대가없이 고립되어 가고있는 상황이다.
〈李元榮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