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타악 연주 거장 김대환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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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글씨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타악 연주의 대가 흑우(黑雨) 김대환(金大換.사진)선생이 1일 오후 7시20분 지병으로 입원 중이던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 71세.

고인과 20년지기로 2일 입관식에도 참관한 한완상(韓完相) 한성대 총장은 "내가 교육부총리로 있을 때 학벌을 타파하고 상상력과 창의력 위주의 교육 시스템으로 가려고 노력했던 것은 다 金선생님을 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살아있는 한국의 문화재를 잃었다"며 비통해했다. 1960년대 金씨와 함께 밴드를 했던 신중현(申重鉉)씨도 "잠시도 쉬지 않고 음악만을 고집해온 열정적인 선배"라고 회상했다.

고인은 열손가락 사이에 여섯개의 북채를 쥐고 큰북을 두드리는 독특한 연주로 유명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은 그를 가리켜 '몸 예술의 거장'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열세살 때 처음 북채를 든 고인은 군 제대 후 미 8군에 들어가 이봉조.길옥윤.최희준씨 등과 함께 악극단을 조직, 전국을 돌며 순회 공연을 열어 한국 대중음악의 1세대로 평가받았다. 한국 그룹사운드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80년대 들어 재즈 연주자로 변신한 그는 미국 인디언 페스티벌,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등 500여회에 걸친 해외 공연에 참가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예술적 독창성은 음악과 양립하기 쉽지 않은 서예를 통해 더욱 빛을 발했다. 마흔살부터 세서미각(細書微刻)에 빠져든 그는 쌀 한톨에 반야심경 283자를 새겨 90년 세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동(動)과 정(靜)을 넘나들면서도 최고의 예술적 성취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그는 더욱 거목으로 평가됐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주 교통수단을 오토바이로 할 만큼 젊음을 뽐냈던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인생의 길엔 '가기 위한 길'과 '걷기 위한 길'이 있다. 가기 위한 길엔 목표가 있지만 걷기 위한 길엔 목표가 없다. 나는 한번도 목표를 정하고 살지 않았다. 산책하듯 걷기만 했고, 매 순간 충실했을 뿐이다. 남들이 말하는 영예의 자리는 정말 부산물에 불과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권명희씨와 딸 지양씨가 있다. 발인은 3일 오전 6시30분. 발인 후 서울 인사동과 퇴계로. 대학로 등에서 노제가 열린다. 02-392-2299.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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