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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과학기술계의 아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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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실 정부 부처가 어떻게 조직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 행정체계를 보면 과학기술 담당부서가 독립된 경우도 있고, 교육 관련 부처와 통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개 경제 발전 초기단계에 구체적 기술의 획득이 주요 목표가 되는 경우에는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경제 수준이 높아져 창의적 인력 양성이 중요해지는 경우에는 영국이나 독일처럼 고등교육과 과학기술 연구기능을 합치는 것이 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 두 단계의 중간쯤에 있는 형편이어서, 정책적 판단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는 작은 정부와 대부처주의를 표방했기에 교육과 과학기술 연구기능을 합치는 선택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이러한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큰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성명서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는 사교육 등 중등 교육 쪽의 이슈가 아직도 큰 국가적 현안으로 남아 있어 정부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당장 국민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장기적인 과학기술의 이슈는 아무래도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물론 영국처럼 초·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을 분리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으나, 새 정부의 조직개편안은 이 면에서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내각과 청와대의 인적 구성에 관한 문제다. 이번에 통폐합되는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는 과거 대표적으로 이공계 인사들이 장관을 했던 부처다. 이 부처들이 교육과학부와 지식경제부로 통폐합되면서 이공계의 시각이 국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교육과학부나 지식경제부의 수장에 과학기술계 인사를 임명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장관 선임에서는 분야별 안배보다 그 부처에서 당시 가장 중요한 현안을 잘 해결할 능력을 가진 사람을 고르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셋째는 정부 과학기술 연구개발 사업의 효율적인 조정에 관한 일이다. 이제 국가 연구개발 사업은 10조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10여 개의 부처가 참여하고 있는 대형 사업이다. 이 사업들을 낭비나 중복 없이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부처 간의 종합적인 조정 기능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과학기술부총리가 이 업무를 담당했으나, 과기부총리가 폐지되는 새 정부에서는 어떻게 될지 막연한 실정이다.

이처럼 과학기술계가 우려하는 사항은 상당한 근거가 있기에,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더라도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보인다. 그 한 방안으로 청와대 대통령실에 과학기술특별보좌관을 임명하는 것이 제시되고 있다. 과학기술특보가 부처 간 과학기술 예산의 종합 조정, 장기적인 국가의 범부처적 연구개발 계획 등을 관장하면 커다란 행정조직 없이도 앞에서 말한 과학기술계의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 번 진지하게 고려할 만하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