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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시행착오 줄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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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권 교체의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이슈는 신·구 정권 간에 국가 경영의 노하우와 경험을 이전하는 작업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5년 전 신임 대통령이 되고 나서 과거 정부의 주요한 의사결정 등 고급 정보는 고사하고 기본 자료조차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고 통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취임하자마자 본인 스스로 청와대 내에 ‘이지원(e-知園)’이란 지식정보관리시스템을 구축해 국정 수행 관련 모든 주요 자료를 정리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몇 달간 새 정부에 전달할 참여정부 5년의 국정자료집과 정책백서들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신·구 정권 간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국가 운영의 핵심 지식 이전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인수위의 여러 가지 진단-보고-발표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신임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간의 국정 운영에 대한 선임정부의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청계천 복원의 성공이 그대로 전 국토에 걸친 대운하 사업의 성공으로 복제될 수 있을까. 서울시장으로서의 경력이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위해 충분한 경험과 지혜의 보증서라고 믿을 수 있을까. 아마도 불충분할 것이다. 대통령 취임도 하기 전에 벌써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리고 통신비 인하, 영어몰입교육 등 제대로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반시장적인 아이디어들이 인수위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치우친 사회주의’ 정권의 폐해 못지 않게 ‘성급한 자본주의’ 정권의 시행착오 역시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새 정부는 과거 정부가 진행했던 정책이나 제도는 무엇이든 갈아엎어 버리는 ‘재개발 정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선임 정권의 경험과 지혜를 흡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성숙한 ‘학습정부’가 되어주기 바란다. 좌절한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지원 시스템의 하드디스크를 아예 지워버리기 전에 새 정부는 참여정부의 브레인들로부터 국정 운영의 핵심 지식을 제대로 인수·인계받아야 할 것이다.

김영걸 KAIST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