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해외칼럼

2·13 합의 1주년이 주는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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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994년의 북·미 기본협정과 달리 이 합의안은 회담 참가국 모두 찬성했고, 유엔 안보리의 제재 조치가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에 실행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그동안 합의안이 실행된 방식 때문이다. 첫 번째 경고 신호는 지난해 3월 1일 미 국무부와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북한 자금을 돌려주겠다고 밝히면서 나왔다. 이 자금 중 절반은 마약과 위조지폐 제조로 번 돈을 세탁한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나서서 이 자금을 송금해 국제금융 시장에서 북한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도와줄 것을 요구했고, 미국은 이를 들어줬다. 뉴욕의 연방준비은행이 악역을 맡았다. 이 자금의 성격을 알고 있는 민간 은행들은 어느 곳도 나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미국이 외교적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자신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냈다.

미국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에서도 양보했다. 2·13 합의에 따르면 북한이 완전하고도 정확하게 핵무기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는 2단계 작업이 완료돼야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는 절차에 착수한다고 돼 있다. 2003년 미 국무부는 연례보고서에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되려면 납북 일본인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후 국무부는 납북 일본인 문제와 테러지원국 해제 사이에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으며, 테러지원국 해제는 미국이 단독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태도를 바꿨다. 법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태도 변화로 일본에선 미국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이 엄청나게 커졌다. 또 북한에는 3각(한·미·일)과 양자(미·일) 조율이 약해졌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영변 핵시설 폐기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영변 핵시설은 노후했고 지난 몇년 동안 대부분 가동이 중단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대신 유엔 안보리의 기존 제재 해제와 추가 제재 모면, 핵 보유국 지위 확보라는 보상을 얻어내려 했다는 점이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했다는 미국의 주장을 뒤집을 증거라며 알루미늄 튜브를 제출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 이 튜브에서 고농축 우라늄이 검출돼 핵무기 개발에 대한 애초의 혐의를 확인시켜줬다. 북한의 초기 핵신고 목록엔 30㎏의 플루토늄만 포함돼 있고, 핵무기에 대한 정보는 없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초기 신고가 ‘최종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2·13 합의가 가능성이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BDA 자금 동결이나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북한의 국제 무기 거래와 호화 수입품 거래 금지)와 같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제재 수단이 동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동안 북한의 비협조에 대해 어떤 제재도 없었다. 북한으로선 당연히 미국에 들어설 새 정부와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하기 위해 2·13 합의안 실천을 질질 끌 것이다.

포용정책은 유인책과 압력이 병행돼야 한다. 또 합의안을 실천하지 않았으면 징계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와 차기 미국 정부는 2·13 합의안을 통해 얻은 긍정·부정적 교훈을 모두 명심해야 한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정리=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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