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매맞는 아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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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언젠가「매맞는 아내」에 관한 미국(美國)CNN방송의 보도프로는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시청자께서 이 프로를 지켜보시는 동안 14명의 여성들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누군가에 의해 심하게 얻어맞고 있습니다.』프로는 3분30초짜리였 다.15초마다 한명꼴이라는 얘기다.클린턴대통령은 지난 21일 FBI(연방수사국)의 추계를 인용,12초마다 한명꼴로 늘려잡았다.
15초당 한명은 85년 「전국가정폭력실태조사」에 근거한다.주먹으로 구타당하거나,발로 차이거나 집어던진 물건에 얻어맞는 경우다.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는 아니지만 48%가 「심각한 폭력」을 호소했다고 한다.
병원응급실로 실려오는 여성들가운데 50%이상이 배우자의 물리적 폭력 때문이란 최근의 충격적인 보고서도 있다.보건후생장관인도나 샬라라여사는 50%까지는 뭐해도 20~30%는 사실일 것으로 추정한다.여성의 권익과 사회적 지위가 어느 사회보다 신장돼 있다는 미국이 이 지경이다.
클린턴은 마침내 이 「가정폭력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15세부터 44세까지의 여성들에게 가장 큰 적(敵)은 암(癌)도 교통사고도 아니고 사랑하는 남편과「그이」의 「주먹」이라니기가 찰 일이다.
아내들이 매를 맞을 때 옆에 있는 아 이들까지 곁들여 맞는다는 사실이 심각성을 더한다.『가정내 폭력은 너무 오랫동안 사사로운 일로 방치돼 왔다.
지금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주부가 가정에서 안전하지 못하고,어머니가 집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없다면 「아메리카의 꿈 」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문(反問)이다.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OJ 심슨 사건 역시 가정폭력의 극단적인 형태다.
「사랑폭력」연구의 한 파이어니어인 심리학자 앤젤라 브라운은 『여성들은 생판 모르는 남자보다 현재의,또는 과거의 사랑상대에의해 살해당할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고 말한다.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여성 4명중 1명은 일생에 한번 이상 물리적 폭력을당한다.16명중 1명은 사랑상대에 의해 살해될 위험성도 있다』고 경고했다.끔찍한 사랑의 패러독스다.
법무부에 여성폭력대책기구에다 핫라인 신고전화망이 설치됐지만 그이의 주먹보다 어찌 더 가까우랴.남편과 대등하게 나가 벌고,집에 와 예사로 얻어맞는다면 미국의 아내들은 뭔가.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에,크고 작은 결정권을 행사하는 우리의 「사모님」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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