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40대 3인방의 창업 성공기 ‘날아라 쥐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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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온갖 어려움에도 꿋꿋하게 성공 창업을 이뤄가는 쥐띠 ‘사장님’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김규현·윤명실·이은경씨.

윤명실씨 실내포장마차로 영역 넓힌 ‘호떡의 여왕’

올해는 쥐띠해(戊子年). 쥐의 특징은 근면이다. 남편과 사별하고, 직장일과 가사를 모두 거치고, 소년가장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왔지만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성공한 쥐띠 3인방의 창업 도전기를 추적했다.

◇남편 잃은 아픔 딛고=호떡을 브랜드화한 사람이 있었다. ‘황가네 호떡’으로 화제를 모았던 윤명실(48)씨. 그는 요즘 실내포장마차 ‘황포25’로 새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그가 호떡장사를 시작한 것은 1994년. 남편과 함께 경기도 일산의 한 쇼핑센터 앞 길거리에 호떡집을 차렸다. 조명가게, 공사장 밥집 장사 등에서 쫄딱 망한 뒤 일곱 번째 도전이었다. 그는 그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입지선택, 맛 개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전략을 세웠다. 이게 대박이 났다. 전국에 400개가 넘는 가맹점을 개설했다. 그러던 중 2005년 남편이 등산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든든히 옆을 지켜 주던 남편이 떠나니 인생이 허무하더군요.” 의욕을 잃은 그는 호떡 사업을 접었다.

그러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남편이 생전에 구상했던 실내포장마차 사업을 추진하기로 마음먹고 2005년 7월 홍익대 부근에 60~70년대 선술집 분위기를 재현한 황포25를 열었다. 그는 ‘섬김형’ 서비스로 승부를 걸었다. 종업원들은 주문받을 때 무릎을 꿇는다. 특수 메뉴인 오돌뼈 주먹밥을 손님 입에 넣어 주기도 한다.

그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사소한 것들이 다른 점포와 구별 짓는 요소”라고 말했다. 월평균 매출은 8000만원. 그는 “황포25는 남편이 남긴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했다.

이은경씨 창업 한달 … 매출 1000만원 샌드위치 대박

◇커리어우먼→전업주부→사업가=“직장 경력, 주부 경험으로 승부합니다.” 샌드위치 전문점 ‘샌드앤푸드’ 안국점을 운영하는 이은경(36)씨는 창업한 지 한 달 된 창업 초보자다. 외국계 해운회사에서 13년 근무했던 그는 2005년 회사를 그만두고 2년간 전업주부로 지냈다. 아이가 크면서 자신만의 일을 갖고 싶어 지난해 창업을 결심했다.

업종 선택부터 고민하다가 결국 여성들이 운영하기에 깔끔하고 노동 강도도 비교적 낮은 샌드위치 전문점을 택했다. 젊은 여성 사이에서 간편한 식사대용식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테이크아웃 형식으로 팔 수 있어 투자 비용이 적다는 점에도 마음이 끌렸다. 이후 발품을 팔아가며 남편·아이와 함께 시장조사를 했다. 친구와의 약속도 무조건 샌드위치 가게로 정할 정도였다.

그는 “쌀가루로 만든 빵을 사용, 우리 입맛에 맞는 샌드위치를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 2명을 두고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직장일, 가사, 사업 가운데 사업이 가장 힘들다”며 “몇 년 뒤 근사한 레스토랑을 갖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월평균 10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김규현씨 방문 잉크충전업 …“학업·사업 다 잡겠다”

◇소년가장에서 사장으로=경기도 수원 경희대 컴퓨터공학과를 휴학 중인 김규현(24)씨는 집으로 직접 가서 잉크·토너 충전을 해주는 ‘잉크가이’ 수원 원천동 경희대점을 운영 중이다. 그는 네 살 때 부모를 여읜 소년가장 출신.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할머니 밑에서 고학했다.

그가 창업을 결심한 때는 2005년. 군 제대 뒤 바로 복학을 하지 않고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실시하는 사업설명회와 창업박람회를 여러 차례 찾았다. 4개월여의 준비를 거친 그는 2006년 1월 사업을 시작했다. 무점포가 가능해 창업비용이 저렴한 게 마음에 들었다. 창업비용 1250만원은 군 복무 시절과 아르바이트로 마련했다.

그는 모교 내 사무실과 인근 건설현장 사무실을 대상으로 영업하면서 매출을 늘렸다.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자 고객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거래처가 늘었다. 월 매출은 750만원.

어느 정도 돈을 모아 지난해 11월 18일엔 결혼도 했다. 하지만 결혼 일주일 뒤 같이 살던 할머니가 사망했다. 그는 “이제 호강시켜 드리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올 3학년 2학기에는 복학할 예정. 그는 “쥐처럼 부지런히 돈을 모아 학업과 사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말했다.

글=정선구, 사진=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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