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吉屋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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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6월19일 SBS-TV가 마련한 길옥윤(吉屋潤)을 위한 콘서트에 그가 휠체어에 앉은 모습으로 나타나자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머리가 모두 빠지고 창백한 낯을 한 그는 완연한 癌 투병환자의 모습 그대로였 다.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잃진 않았지만 이제 그는 곧 우리 곁을 떠나게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그로부터 꼭 아홉달만에 그의 안타까운 부음(訃音)을 듣는다.
부드러운 재즈風에서 출발한 그의 음악은 특히 도시인의 정서에맞았다. 「사랑이란 두 글자는/외롭고 흐뭇하고/사랑이란 두 글자는/슬프고 행복하고」로 시작되는 그의 사랑의 정의(定義)는 씁쓸하고,달콤하고,차갑고,따뜻하고,태양이 빛나고,달빛이 흐려지고,결국 길고도 짧은 얘기로 끝난다.그는 그런 사랑의 가 슴으로 일생을 살다 갔을 것이다.경쾌하고 때로는 우울한 수백곡의 멜로디를 우리에게 남기고….
그가 더욱 우리의 사랑을 받은 것은 톱 가수 패티 김과의 사랑과 이별의 사연이 애틋하기 때문이다.그는 66년 패티 김과 결혼,73년 이혼했다.그녀와 지낸 7년은 그의 황금기였다.수많은 히트곡들이 그때 쏟아져 나왔다.두 사람은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면서도『사랑하기 때문에 이혼한다』는 명언(名言)을 남겼다.
이례적으로 이혼을 공표하는 기자회견도 가졌다.그 무렵에 작곡된『이별』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냉정한 사람이지만/그렇게 사랑했던/기억 을 잊을 수는 없을거야」.
패티 김이 부른 이 노래는 가사중 「기억을」부분이「길옥윤」으로들려 화제를 모았다.
그는 88년 서울 강남에 음악카페 「창고」를 차렸다.거기서 그는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지명인사들과 인생을 얘기하기도 하고,때로는 그의 전공인 색소폰을 연주하기도 했다.장사가 잘 안되자 쫓기듯 일본으로 건너가고,또한번 결혼하고,병 을 얻고,다시 귀국해 부산의 동생 친구 병원에 입원한 것이 그의 쓸쓸한 말년(末年)이다.
그는 53번이나 이사다녔지만 자기 이름의 문패를 단 것은 서너번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성공한 예술가도 안락한 노후(老後)가 보장되지 않는 우리의 척박한 문화풍토를 탓해야 할까.그가 말년까지 음악활동에만 전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 을까.아쉬움속에서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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