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연의IN-CAR문명] DMB는 운전 중 꺼두셔도 좋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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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세계적으로 저명한 한 동물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슴이 사자 옆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차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과 비슷하다.” 이 말은 인간이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TV 기능이 있는 내비게이터를 달고 다니는 운전자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도 위험한데 운전자의 시야마저 빼앗아 버리는 제품이기 때문이죠. 하긴 자동차 역시 혁신적인 이동수단이지만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는 태생적인 모순을 안고 태어났지요. 운전 중 TV를 보지 말라고 해서 사람들이 따를까요? 음주운전을 아무리 단속해도 끊기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런 캠페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또 내비게이터 제품에 주행 중 TV시청을 못하게 하는 장치를 달아도 효과가 없을 겁니다. 카오디오 전문점에 가면 그런 족쇄는 곧 풀립니다. 센서를 달아서 일정 속도를 넘으면 화면이 꺼지게 하는 장치를 만든다고 해도 바로 센서 기능을 무력화하는 기술이 나올 것입니다. 법으로 TV 시청을 금지시켜도 분명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차 안에서 보려고 할 것입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시도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죠. 결국 세상의 모든 자동차에 자동항법장치가 달린 이후에나 나왔어야 할 위성멀티미디어방송(DMB) 장치가 너무 빨리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안전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등장한 칠삭둥이인 셈이죠. 제가 아직 운전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디지털 시대의 방어운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 앞차의 뒷면 유리를 통해 차내에서 빛이 불규칙하게 퍼져 나오면 100% DMB 시청 중입니다 절대로 그 차의 뒤를 따라가지 마십시오, 전방 주의력이 떨어진 앞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을 확률이 많습니다.

#2.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이 DMB를 틀어놓고 자꾸만 화면에 관심을 가질 때에는 용감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십시오.

“기사님 이 내비게이터 어떤 맵을 쓰나요? 저도 하나 사려는데 화면을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고 나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내비게이터의 기능에 관한 질문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방법만이 운전기사의 TV 시청을 막는 길입니다.

제가 아는 운전 고수는 비 오는 날 야간 운전 때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라디오도 켜지 않습니다. 타이어가 도로 위의 물 가르는 소리를 들으면 좌우 차들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의 운전 감각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남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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