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법조계에 노래의 맛 알리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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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강찬(42·서울 고등법원·사진) 판사는 현재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에서 ‘중절모 판사’로 불린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두꺼운 코트에 중절모를 눌러 쓰고 다니기 때문이다. “혹시 감기라도 들어 목을 상하면 안되잖아요.”

이처럼 목에 신경 쓰는 이유는 3일 열리는 첫 독창회 때문이다. ‘테너 정강찬’은 이날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독창회를 연다. 이 공연장에서 아마추어가 독창회를 여는 것은 보기드문 일이다.

서울법대 84학번, 사법시험 33회 출신인 정 판사는 “그야말로 숨쉴틈 없이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 그가 노래의 맛을 알게 된 것은 2004년,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일할 때였다. 법원 근처의 자그마한 홀에서 하는 작은 음악회에 찬조 출연을 요청받은 것이 노래 인생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원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받았죠. 그런데 무작정 무대에 설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음대 학생을 찾아가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재미를 느끼자 김신환·유홍준·안광영·오은숙·이점자 등 프로 성악가들을 찾아다니며 노래를 배우고 도움을 받았다. 야근을 마치고 밤 11시에 노래 공부를 하러 갈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헌법재판관회의는 그가 법조계에서 ‘테너 판사’로 데뷔한 계기가 됐다. 폐막하는 날, 법원 내 성악 애호가들을 모아 함께 노래를 한 것이다. 그는 ‘잘자요, 아가씨들(Good Night, Ladies)’이라는 미국 민요를 ‘안녕히 가세요, 판사님들(Good Bye, Justice)’로 바꿔 불러 외국 재판관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의 모교인 숭실고등학교에서 “법조인으로서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며 특강 자리를 마련하자 딱딱한 법 얘기보다 부드러운 선율로 후배들의 마음을 얻었다. 즉석에서 이탈리아 가곡 네 곡을 연달아 불렀다고 한다.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그가 노래를 하는 첫째 이유다. 노래를 하면서 불같던 성격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운전을 하다가 신호 때문에 멈추면 차에서 시원하게 ‘오 솔레 미오’를 한 곡 뽑는다. “노래야말로 고단한 인생의 쉼터”라는 것이다. 14년 전 둘째 형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비어버린 마음도 음악으로 치유했다.

“노래하는 둘째 이유는 법조계에 리듬과 멜로디를 불어넣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그의 뜻이 통한 듯 “이번 독창회에 법조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여줘 자리가 모자랄 정도”라고 한다.

독창회 반주는 피아니스트 서혜경(48)씨가 맡았다. 울산지방법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순회 공연을 온 서씨와 만난 뒤 친해져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암을 극복하고 얼마 전 재기 연주를 한 서씨는 ‘테너 판사’의 열정에 기꺼이 힘을 보탰다. 

글=김호정,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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