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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펜화기행] 금강산 표훈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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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금강산 표훈사, 종이에 먹펜, 36X50cm, 2008

금강산에는 많은 절과 암자가 있었으나 전란으로 불타 없어지고 남측에서 복원한 신계사와 표훈사(表訓寺)가 남아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내금강 관광 코스의 중심인 표훈사에는 반야보전·능파루·명부전·영산전·어실각·칠성각에 스님들의 주거 공간인 판도방 등 7채의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2층 누각인 능파루 밑을 통해 절 마당에 들어서니 녹색 이끼가 붙은 기와들이 눈길을 끕니다. 공장에서 찍어내 색도 모양도 똑같은 남쪽 절의 기와만 보다가 손으로 만들고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붙어 있는 기와를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습니다. 이처럼 가난해서 좋은 것도 있습니다만 작은 부처 세 분만 계신 법당은 무척 썰렁해 보였습니다.

두 명의 북측 중선생이 안내를 하는데 나이든 분은 회색 법복에 붉은 가사를, 젊은 분은 곤색 법복에 붉은 가사를 걸쳤습니다. 양복에 가사만 걸쳤던 예전 모습에 비해 발전한 셈이지만 머리를 깎지 않아 아직도 어색해 보입니다. 종교학과를 나왔다고 하는데 종교가 없는 북측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신계사 복원을 맡았던 남측의 제정 스님은 북측의 요구로 철수했답니다. 무척 섭섭했을 스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내금강 코스의 정점인 묘길상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북측 안내인이 ‘펜화를 배우고 싶다’고 하네요. ‘손이 시리지 않으냐’며 장갑을 빌려주고 ‘길이 미끄럽다’며 팔짱을 끼는 등 처음부터 수상쩍다 했더니 속셈이 있었던 게지요. 곱고 복스럽게 생긴 북측 미인의 부탁을 거절할 남측 남정네가 있겠습니까. 남측에도 없는 제자가 북측에 생겼는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합니다.

김영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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