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북한문학論 美서 최초출간-"영웅의 탄생"마이어스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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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의 한 문학평론가가 분단직후부터 현재까지의 북한문학을 조명한 문학평론집을 미국 커넬대에서 펴냈다.브라이언 마이어스가 쓴『영웅의 탄생』(Birth of a Hero).이 책은 영어로씌어진 첫번째 북한문학론.그런 만큼 국내외 북한 문학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먼저 북한문학이 30,40년대 형성된 소비에트사회주의리얼리즘에 충실했다는 일부 한국학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한다.저자의 주장은 북한문학의 경우 사회주의리얼리즘은 차치하고 마르크스 레닌주의문학이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이다.
북한에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이 실패한 원인으로는 이데올로기보다 권력층에 대한 충성을 앞세우는 관료주의적 전통이 지적되고 있다.이 책에서 주된 분석대상이 된 인물은 지난 1970년 사망한소설가 한설야(韓雪野).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韓의 소설은 소련인 번역가마저도 이데올로기 면에서 모욕적인 구석이 많아 줄거리를 완전히 바꿔야 했을정도였다.그가 1948년 북한문학가동맹의 의장으로 선출된 것은순전히 당시 북한 지도자였던 김일성의 우상화에 기여한 공로 때문이었다고 한다.그같은 충성때문에 한설야는 그후 1962년까지관료주의적 도당주의자등 갖가지 비난의 와중에서도 화를 면할 수있었다. 세계 도처의 세습체제에서 늘 그래왔듯 북한의 관료주의에서도 작가들에 대한 평가는 작품수준이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충성도에 의해 좌우되었다.
한설야는 뚜렷한 정치의식을 가지지 않고 주민들의 자발적 행위를 부추기는 작품을 많이 발표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한이 자발적인 인물로 그리는 주인공은 순진함으로 포장되면서 「진정한 북한인」으로 부각된다.
이 책의 저자 마이어스는 이같은 순진함을 이상화하려는 경향의뿌리를 일본 점령 당시 복종에 익숙했던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문화에서 찾고 있다.이런 현상은 레닌이 1902년 발표한 『무엇을할 것인가』라는 소책자의 요지,즉 대중의 순진 성은 외부로부터정치적 의식을 주입받기 전까지는 위험천만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한설야가 1953년 발표한 『력사』라는 소설에는 인종적 혐오감을 부추겨 빨치산병사를 모집하려는 장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그 앞서 1951년 발표된 『승냥이』는 일제시대에 들어온 한 미국선교사의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그린 작품이다 .
마이어스는 1960년대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김일성우상화의 조짐까지도 한설야의 작품에서 끄집어내고 있다.당시 김일성의 행적을 소재로 한 한설야의 작품을 보면 구성이 모두 주민들의 순수성과 자발적인 행동의 승리로 묘사하고 있다는 설 명이다.
이 책은 북한의 여러가지 제약때문에 완성도를 떠나서 희소성만으로도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지금까지 영어로 씌어진 북한문학관련자료로는 1976년 하와이대의 마셜 필교수가 발표한 논문이유일하게 꼽혀왔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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