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옛날 옛적에, 아니 30년 전에 귀신고래가 살았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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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귀신고래 김일광 지음, 내 인생의 책, 208쪽, 1만1000원, 초등 고학년 이상

 미리 말해두지만 이 이야기는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우리 산천의 일부였던 어떤 생물에 대한 슬픈 이야기다. 책은 70년대 중반까지 포경선 ‘용운호’의 선장으로 일했던 김준기옹의 실제 사연을 그렸다. 할아버지가 된 그가 손자인 연오에게 고래 사냥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엮었다.

누구보다 고래를 사랑했던 소년이 포경선 선장이 된 까닭과 잔인한 고래 사냥의 순간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귀신고래는 현재 전 세계에 단 2종류, 동해에 사는 ‘한국귀신고래’와 태평양 동쪽에 사는 ‘캘리포니아귀신고래’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3만 마리 이상 남아 있는 캘리포니아귀신고래와 달리 한국귀신고래는 지나친 포획 때문에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77년 울산 방어진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데 동해에서 사라진 귀신고래들이 러시아 사할린과 일본 앞바다에서 한두 마리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살육을 피해 태고적부터 살던 서식지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귀신고래는 처음 생물학계에 보고된 1914년 붙여진 이름 대신 아시아귀신고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책은 선장 할아버지의 입을 빌려 무분별한 사냥으로 귀신고래를 몰아낸 어리석은 우리의 과거를 반성한다. 그리고 손자인 연오의 세대만은 동해 앞바다를 헤엄치는 귀신고래의 정겨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길 희망하며 끝맺는다. 어쩌면 한국귀신고래의 실종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생명을 아끼는 마음과 자연애를 선사하고 싶은 부모에게 권한다. 매끄러운 문체와 따뜻한 질감의 삽화도 인상적이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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