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태안 오염과 전문 방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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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해양생태계를 조속히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름도 모두 제거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기름은 대부분 중장비 혹은 사람의 손을 이용하는 기계,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해 제거가 가능했다. 그러나 모래·자갈·바위·개펄 속에 들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기계·물리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이런 경우에 바로 자연계의 미생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 다만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가 문제지 결국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 미생물이 없다면 지구는 온통 쓰레기 천지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미생물 없이는 살 수 없다.

문제는 이번 오염사고와 같이 일시에 많은 양의 기름이 들어오면 자연계의 미생물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선 많은 양의 유류를 먹어 치우려면 산소가 많이 필요하다. 특히 탄소로 구성된 유류를 먹기 위해선 질소와 인 같은 영양물질이 요구된다. 오염 해역에 유류 분해 미생물 숫자가 매우 낮을 경우나 자연계 미생물에 의해 거의 분해가 되지 않는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poly aromatic compound) 화합물을 분해하기 위해선 강력한 유류 분해 미생물을 첨가해 주기도 한다. 이같이 미생물 및 환경의 최적조건을 조절해 주어 유류를 빨리 분해하는 방법을 생물정화 기술이라고 한다.

이 방법을 적용하기 전에 우선해야 할 일은 오염 정밀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어디에, 얼마나 많은 양의 기름이 분포돼 있는지 오염지도를 만든 뒤 이를 바탕으로 오염 지역의 조건에 따라 최적의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먼저 바다 속의 기름은 계속 이동하므로 사실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고, 자연의 정화능력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안의 오염은 생물정화 기술을 적용해 최대한 빨리 생태계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중 모래사장은 시루떡의 팥고물이 층층이 있듯 모래층 사이사이에 기름이 오염돼 있다. 현재 사용하는 방법은 미생물이 유류를 분해하는 데 충분한 공기를 넣어 주기 위해 밭이랑을 파듯 농기구로 갈아엎는 것이다. 만리포 지역의 모래 지역은 이 방법이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은 질소와 인을 적정량으로 뿌려주고, 상부 조간대(潮間帶)의 경우는 해수를 하루에 몇 번씩 뿌려 주는 방법을 추가할 것을 추천한다.

자갈·바위 밑에 오염된 지역은 여러 공법을 적용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모래의 경우보다는 더 어렵다. 그러나 기본 원칙은 모래와 같이 적절한 영양물질과 공기를 제공하고, 생물유화 능력과 분해 능력이 우수한 미생물을 첨가해 주면 효과가 매우 좋을 것이다. 또한 개펄 오염 유류도 혐기성 생물정화 기술이 이미 개발돼 있어 적용할 필요가 있다.

아무쪼록 이번에는 시프린스호 사고와는 달리 생물정화 전문방제를 사용해 아름다운 태안국립해상공원을 빨리 되살려 내야 한다. 특히 이 같은 방제법을 적용할 수 있는 ‘해양환경관리법’이 20일 발효된 만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된다. 더 나아가 국가 긴급방제 계획, 방제과정, 환경영향 등에 대한 철저하고 과학적인 조사도 병행돼야 한다.

김상진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생명공학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