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材첩첩 일본경제 해가 지는가-곽재원 동경특파원 현장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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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일본경제가 왠지 자신을 잃고 갈길을 못찾고 있는 모습이다.경제가 체한 것 같다.전후 독일과 함께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냉전체제 붕괴이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패권싸움인 경제大경쟁에서 흔들리고 있는게 아닐까할 정도로 허약한 면을 드러내고 있다.영국 베어링은행의 도산에 따른 충격과 증권시장침체는 자신잃은 일본경제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것이다.주춤거리는 일본경제의 이모저모를 상세히 분석해 본다.
[편집자註] 일본에서는 해마다 2~3월이면 기업결산이 겹쳐 주식매물이 대거 출회되기 때문에 주가하락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그러나 지난해 중반부터 과거와는 달리 동경증시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투자가들의 돈이 수년만에 처음으로 눈에 띄게 빠져나가고 있다.이 와중에 베어링증권 도산이라는 핵폭탄이 떨어져 1년2개월만에 1만7천엔대가 깨진 것이다.반면 뉴욕증시에선 다우지수가 4천달러 근처로 과거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관계기사 28面〉 일본은 뭔가 꽉 막혀있는 상황에서 한신(阪神)대지진이라는 엄청난 재해와 부흥수요의 두얼굴을 가진경기변동요인이 발생했다.니시노 가이치로(西野嘉一郎)시바우라(芝浦)제작소前상담역은 이번 대지진과 관련,『경기가 정부의 공적자금투입으로 일시적으로는 좋아질지 모르나 장기적이지는 못할 것』이라며『다시 관동대지진의 부흥경기후와 같이 대불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여기다 거품붕괴로 인한 민간은행들의 불량채권문제가 일본금융시스템의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신용조합의 경영파탄이 겹쳤다.
일본 경제가 맥 못추는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일본식 경영의 뼈대를 이루던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기업내조합의 협동심등 3대요소가 거품붕괴 이후 리스트럭처링.리엔지니어링 등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감원.배치전환.연봉제도입등이 요즘 일본기업의 모습이다.이 때문에 기업내 모 럴이 급격히변화하고 있다.
모기업과 자회사,대기업과 하청기업도 이제는 서로 돕기가 힘에부쳐 각자 제갈길을 찾아나서고 있다.일본산업의 간판격인 자동차업계조차 하청부품회사들을 계열에서 빠져나가도록 부추기고 있다.
달러당 1백엔을 밑도는 엔超강세의 지속과 유통혁명을 넘어선 가격파괴혁명은 일본경제에 폭풍이나 다름없다.수출기업은 물론 산업전체의 구조조정과 임금구조의 개혁등 잠복했던 문제들이 터져나오고 있다.공적(公的)금융기관의 비대화와 민간금융 기관의 高리스크화(금융파생상품등)로 인한 금융시스팀약화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일본은 기술대국이라 자처하면서도 작년에야 비로소 기술무역수지흑자를 냈다.지금까지는 남의 것을 받아다 썼지만 이제는 기초기술의 무임승차는 불가능해졌다.그러나 바로 이때 젊은이들의이공계 기피.제조업 현장이탈등 기술입국의 기치를 무색 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무라야마(村山)정권의 약한 기반과 정치유동화가 맞물린 정책부재,정책결정의 지연도 경제력 약화와 무관치 않다.무라야마 정권의 3대 정책기둥인 규제완화.특수법인정리.지방분권은 정쟁에 휘말려 갈길이 멀다.
일본경제는 작년에 1천4백90억달러의 사상최대 무역흑자를 냈다.아직도 그 기반은 단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들어 많은 사람이 이를 과거의 힘에서 나온 관성(慣性)이라고 지적한다.이에 대해 기요나리 타다오(淸成忠男)법정대교수는 『지금 일본경제에는 21세기를 겨냥한 新산업창출 촉진제도와 산업체제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산업의 소프트화가 급격히 이뤄지는데 대응해 벤처비즈니스의 육성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와타 기쿠오(岩田規久男)상지대교수는 『산업구조조정과 함께 산업전반에 활력을 주기위해 통화공급을 중시하는 금융정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4단체와 통산성.대장성의 각종 심의회들이 올들어 유난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그러나 과거 일본경제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증상에 대해 마땅한 처방전을 찾는게 쉽지않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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