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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한복판서 되살아난 ‘개구리 소년’의 악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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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16면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범계역에서 안양지역 초등학교 교사들이 실종된 이혜진양과 우예슬양을 찾는 전단을 시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실종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기도 안양경찰서 냉천치안센터. 치안센터 정문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 경고문이 붙어 있을 뿐 한산한 풍경이다. 상황 대기를 하고 있는 두 명의 경찰관을 제외하고, 전 수사인력이 안양과 인근 평촌 지역까지 수색과 탐문수사에 동원됐기 때문이다.

안양 초등생 실종 한 달째…

현장 수사를 지휘하는 김병록 형사과장은 어둡고 피곤한 얼굴이었다. 김 과장은 치안센터에 수사본부가 차려진 지난달 28일 이후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단순 실종이 아닌 유괴나 납치 같은 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아직까지 용의자 압축도 하지 못한 상태”라며 답답해했다. 지금까지 수사관 60여 명, 의경 연인원 1만2500명, 수색견 75마리가 동원됐다. 경찰은 사건 초기 집 주변과 수리산(해발 488m), 안양천변 일대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이어 수색 범위를 집 반경 5㎞까지 확대했다. 인근 야산을 중심으로 헬기 수색도 두 차례 실시됐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도 단서가 잡히지 않아 현재로서는 사건 수사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60여 건의 시민제보가 들어왔지만 이제는 시민제보도 거의 끊긴 상태다.

혜진이 어머니 이모(42)씨는 “막내딸의 실종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만약 혜진이를 데리고 계신 분이 있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 제발 엄마 품으로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식당 일을 하며 어렵게 세 자녀의 학비를 벌어왔던 이씨는 일손을 아예 놓았다. 회사원인 아버지와 고등학교 1학년인 이양의 오빠, 중학교 2학년 언니 등 네 가족이 밤늦게까지 전단을 배포하고 있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학교·시민단체·안양시·의용소방대 등 관계기관에서 두 아이를 찾기 위해 주택가와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최근에는 두 아이의 무사 귀가를 소망하며 안양 YMCA 앞길 가로수마다 노란 리본 수백여 개를 달기도 했다.

김병록 형사과장은 “실종사건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며 “어떤 가능성만 갖고 생사 여부나 사건 유형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사방법에 대해 경찰은 탐문·수색 외에는 함구하고 있다. 김 과장은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 수사방법이 새나갈 경우 용의자가 증거인멸을 시도하거나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엄청난 양의 자료를 하나하나 뒤져보고 있으며, 시민들의 제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혜진이와 예슬이는 실종 당일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두 아이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고 교회와 태권도학원도 함께 다니며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실종되던 날 혜진이와 예슬이가 함께 놀았다는 놀이터를 찾았다.

안양 8동의 한 아파트에 위치한 놀이터에는 한낮인데도 놀고 있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실종사건의 영향이 더 커 보였다. 놀이터 옆에는 아파트 경비실이 보였다. 경비원 A씨는 “사건 당일 두 아이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비실에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확인해 보니 녹화가 안 돼 있었다”고 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날 두 아이는 오후 2시까지 이 놀이터에서 놀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아이들은 안양문예회관, 부근 문구점, 편의점 등에 들러 풍선·폭죽 등 크리스마스 파티용품을 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아이들의 이동경로에 설치된 CCTV 12개를 모두 확인해 봤지만 아이들이 찍히지 않았거나 사건 당일 작동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는 놀이터에서 1㎞ 정도 떨어진 수입품 가게 앞. 이 가게 주인은 “사건 당일 오후 5시 혜진이가 지나가며 인사하는 것을 봤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후 누구도 두 아이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지나간 길과 골목은 모두 한적하고 외진 곳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통행이 많고, 개방된 장소라 인근 주민들도 “어떻게 실종됐을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제2의 개구리 소년 사건’이란 지적도 있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실종사건이란 점에서 고차방정식보다 풀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경찰은 일단 성범죄 전과자를 대상으로 프로파일링(범죄 심리 및 유형 분석) 기법의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남대 이창무(경찰행정학) 교수는 “금품을 요구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성도착증이나 소아 기호 성향을 가진 사람의 범행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실종된 아이가 둘이라고 해서 범인도 여럿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남자건 여자건 성인이라면 여러 가지 위협수단을 통해 아이 두 명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했다. “금품을 노린 게 아닌 만큼 이번 사건은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이 교수의 추론이다.

이 교수는 지난해 제주도에서 일어난 ‘양지승양 유괴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실종된 양지승(9·초등학교 3학년)양은 사건 발생 40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실종신고 며칠 후 공개수사에 나선 경찰은 주변 불량배와 동종 전과자를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진행했다. 사건 초기부터 성범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조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단서나 목격자를 찾지 못했다. 수사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범인 송모(48)씨는 양양의 집 근처에 살고 있었다. 송씨가 시체를 유기한 곳도 아이의 집에서 불과 120m 떨어진 과수원이었다. 시체는 발견 당시 폐TV와 폐타이어 등으로 가려져 있었다. 수색대원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실종 초기에 시신을 찾았을 가능성이 컸다. 경찰의 수색작업이 당시에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정밀하지 못하고 엉성했기 때문에 성과를 올릴 수가 없었다.

이 교수는 “양지승양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범인이나 단서를 찾기 위해 탐문지역 범위를 무조건 넓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며 “사건 발생 지점 반경 1㎞ 내에서부터 인력을 집중해 초정밀 탐색, 일명 ‘현미경 수사’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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