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입대일이 이틀뒤로 다가온 토요일이었다.
『오는 길에 일본에 들러서 엄마를 만났어.잘 살고 있더라구.
엄마의 남자친구라는 대머리도 만났거든.착한 사람같은데 엄마에게이용만 당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나야 척 보면 알지 뭐.하여간덕분에 내가 엄말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난 괜찮아.』 희수가늘 그렇듯이 냉소적인 말투로 그랬다.희수의 귀국했다는 전화를 받은 건 일주일 전쯤이었지만 내가 이왕이면 다들 같이 볼 때 보자고 해서 그날 만난 거였다.일부러 희수를 피하고자 했던 건아니었다.나는 소설쓰기에 빠져서 잦은 외출이 싫었던 거였다.
소라가 희수의 말을 듣고 어깨를 한번 들썩였지만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소라는 내 송별회에 꼭 참석하겠다고 용호도에서 막올라온 길이었다.
내가 물었다.
『소라는 어땠어.섬에서 보낸 겨울이….』 『그냥 그랬어.파도를 한참 보고 있으면 세상일들이 다 싱거워진다니까.』 나는 날개에서 소라와 희수를 먼저 만나서 한 시간쯤 이야기하다가 송별회를 하기로 한 신촌시장 근처의 어떤 식당으로 함께 향했다.소라는 악동들을 모르니까 나하고 같이 가기로 한 거였다.조그맣고약간은 지저분한 고깃집이었는데 왕박이 정한 장소라고 하였다.
우리가 들어서니까 미리 모여 있던 아이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승규와 영석이,상원이와 덕순이,왕박,양아도 있었고 동우도 보였다.처음보는 단발머리 여자애는 영석이의 새 애인이라고 했고 구석자리에 건영이도 보였다.건영이는 용산의 전자상가 에서 일하고있다는 소식만 들었지 실제로 만난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건영이와 악수를 나누면서 나는 속으로 그랬다.미안해.나는 나대로 부대끼면서 살았어.건영은 다 안다는듯이 조용히 웃기만 하였다.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소주를 마시면서 왁자지껄하였다.차인표와 이정재와 이휘재와 멍달수처럼 인기인들이 모두 군대에 가버리니까 한동안은 보통 남자들이 기죽지 않고 살겠다고 누군가가그랬고,또 누구는 요즘에 바람피우는 여자들은 남자의 혈액형부터제일 먼저 물어보기 때문에 친자확인 소송을 해봐야 별 수 없다고 그랬고….
『훈련소에 가서 며칠만 뺑뺑 돌아보라구.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될테니까.고향 생각하면서 말이야.』 그런 저런 소리들이 무슨 소음처럼 귓가에서 웽웽거리는 걸 느끼면서 나는 무작정소주를 마시고 또 마셨다.그래서 나는 너무 일찍 취해버렸는지도몰랐다.그날 헤어질 때 양아가 나를 붙잡고 조금 울었던 것 같다.양아도 취했기 때문에 조 금 과장해서 말한 건지도 몰랐다.
『써니한텐 너밖에 없어.알지.』 나는 집에 돌아와서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써니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갑자기 입대하게됐다고 말했다.써니엄마는 내 이야기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같았다. 『선희가 알고 있어?달수 군대가는 거.』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그리고 나서 왜 그런 말을 덧붙였는지 모른다.
『군대 가는 거…미안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