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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수의영화산책>폭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여성이 남성을 성폭행할 수 있을까.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으리라곤 상상하기 어렵다.그것은 신라시대 진성여왕의 야화집에나 나옴직한 이야기다.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성폭행은 시종무관을 거느리는 여왕폐하나 노비를 부리는 귀부인마님의입장에서나 있을법한 옛 이야기로 받아들인다.강압적인 성행위는 인체구조학상 아직은 남자몫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폭로』의 여주인공 생각은 다르다.겁탈은 남성고유의 행위가 될수 없으며 성행위의 주도권도 남성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뛰어난 업무수행 능력으로 부사장에 발탁된 그녀는 이젠 부하로 밀려난 옛애인을 사무실로 불러들여 강압적으 로 평소의 지론을 실천하려 한다.그러나 상대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쳐 미수로 끝나자 이에 격분,정절의 사나이를 강제추행범으로 몰아 곤경에 빠뜨린다.
남자주인공은 여성상사의 뜻을 한번 거스른 대가로 궁지에 몰려단단히 곤욕을 치른다.스크린의 태반은 가련한 남자의 끈질긴 결백증명으로 엮어져 있는데 이 모든 상황은 불과 1주일사이에 벌어진다.그가 직장과 가정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 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가위 눈물겹다.컴퓨터회사의 생산부장답게 온갖 첨단장비를 이용해 「옷 벗기는 상전」의 음모를 벗기는데 성공하지만 유능한 엔지니어가 사사로운 싸움에 고급기술을 총동원하는 작태는 그리 남자답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재미는 그런 첨단장비를 동원한 두뇌플레이에 있다.특히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이는 가상현실속에서 숨가쁘게벌이는 대결은 환상적이면서도 흥미만점이다.바로 이점이 젊은층의관객을 사로잡은 것같다.공격과 반격이 정신없이 돌아가다 보니 여주인공(데미 무어)의 농염한 자태엔 시선이 갈 겨를이 없다.
여성의 성폭행은 단순한 흥미유발 수단에 불과하다.
웬만한 컴퓨터지식이 없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영화다.용어부터가컴퓨터잡지에 등장함직한 말이 쏟아져 소위 컴맹(盲)들에게는 부담을 준다.이젠 사랑싸움에도 컴퓨터가 동원되고,영화를 즐기는 데도 컴퓨터를 모르고선 곤란한 시대가 온 모양이 다.
본지 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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