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밥상도 못 들더니 역기를 번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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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마르고 야위어 보인다. 그러나 갈아입은 운동복 위로 슬쩍 드러난 팔다리엔 제법 그럴듯한 근육이 잡혀 있다. 많아봤자 30대 초반 같은 외모. 하지만 내년이면 벌써 불혹(不惑)이란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을 일컫는'얼짱'에 이어'몸짱(날씬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사람)'신드롬을 몰고온 '봄날 아줌마'정다연(39)씨다.

"그냥 열심히 운동한 것뿐인데 자고나니 유명해진 것 같아 아직도 얼떨떨하다"는 정씨. "혹시 날 때부터 몸짱인데 너무 티내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거슬렸는지 정씨는'무너진'체형과 건강 탓에 괴롭고 힘들었던 6년 전 자신의 얘기부터 꺼냈다.

*** 우울증에 시달리던 '몸꽝'

난생 처음 운동에 나선 건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푹 가라앉은 1998년 가을 무렵이란다. 10살, 9살 연년생인 오누이 뒤치다꺼리는 물론 시어머니와 두 명의 시동생까지 모시는 고달픈 '가사'에 시달리다 보니 결혼 전 1m62㎝의 키에 45㎏에 불과했던 날씬한 몸매가 어느새 68㎏으로 부풀어 올랐다. 운동 부족 탓인지 혈액순환 장애도 생겼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발이 저리는 거예요. 심지어 침대에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발이 저려오더라구요." 몸이 망가지면서 함께 찾아온 우울증도 그를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정씨를 괴롭힌 것은 허리 통증이었다. 그래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진단은 마른 비만(겉으로는 정상체형으로 보이지만 몸안에 체지방이 과다하게 쌓인 상태)과 운동 부족. 불어난 체중으로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이다.

"담당 의사가 당장 가벼운 운동부터 하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결혼 전까지도 밥상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없어 친정 부모에게서 핀잔과 걱정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씨는 바로 다음 날 생전 처음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그건 바로 집 근처를 도는 산책이었다.

*** 적지 않은 시행착오

동네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한 것은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나서다. 보다 체계적으로 운동을 하고 싶어서였다.

"처음엔 정말 쑥스럽더라고요. 게다가 남자 회원들만 우글거리고, 영어로만 설명된 운동기구들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그래서 몇달간은 헬스장 구석의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만 하는 등 '숨어서'운동을 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사실 30년간 운동과 담을 쌓고 산 그녀로선 가벼운 아령 들기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러닝머신을 뛰다가 그만두기도 여러 차례. 그렇게 몇달이 흘렀다.

"처음 세달은 살이 재미나게 빠지더라고요. 그러나 4개월째 접어들면서 살은 다시 오르고 체력도 크게 나아진 것 같지 않고."

그 와중에 한가지 음식만 먹는 이른바 '원 푸드 다이어트(One food diet)'후유증도 겪었다. 한가지만 먹다 보니 참다가 나중엔 폭식을 하게 된 것.

"폭식이야말로 몸에 지방을 쌓는, 가장 확실한 길인 줄도 모르고 말이죠."

시간이 가도 헬스 효과를 제대로 못 느끼자 운동 의욕이 한풀 꺾였다. 그 무렵 정씨는 '은인'을 만났다. 피트니스센터의 새 트레이너 안승희씨다. 자신보다 나이도 한살 많고 두 아이를 둔 주부였지만 서너살은 적어 보였다고 했다.

"무엇보다 안씨의 탱탱한 피부가 놀랍고 부럽기만 했어요."

다행히 두 사람은 자매처럼 친해졌다. 안씨가 정씨를 따로 불러 개인강습을 해 줄 정도였다.

*** '정다연식'운동법을 찾아내다

안씨의 조언을 따르면서 몸의 변화가 뚜렷했다. 체중도 크게 줄고 근육도 붙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삶도 달라졌다. 우선 이전보다 훨씬 활달해지고 힘도 늘었다.

정씨는 "할인점에서 쇼핑을 하면 남편은 봉지 두개 들고도 힘들어하지만 나는 세개도 번쩍번쩍 들지요"라며 웃는다. 길을 가다 처녀인줄 알고 남자들이 말을 걸어오는 '작은 즐거움'도 생기더란다. 이렇듯 매일 변신을 실감하며 운동에 재미가 생기자 헬스 관련 책들을 찾아보며 '독학'에 나섰다. 그러면서 잘못된 운동 습관을 하나씩 고쳐나갔다. 운동 전후에 아무 것도 안 먹기가 제일 먼저 버린 나쁜 습관 중 하나.

"운동한 게 아까워 심지어 물도 안 마셨지요.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럴 경우 영양 공급이 제대로 안돼 근육이 잘 안 만들어지고 몸의 탄력도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기죠. 지금은 운동 후엔 반드시 음식으로 보충하고 운동하는 틈틈이 큰 페트병 두개 분량의 물을 마시는 것도 잊지 않지요."

항상 고정된 중량의 기구로 '무게 운동(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매일 똑같은 무게의 덤벨을 들면 운동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지요. 조금씩이라도 무게를 늘려가야 근육도 긴장하고 더욱 강해집니다."

*** 더욱 거세게 불어라-'몸짱'바람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5 년여가 지난 정씨는 이제 전 국민의 스타다. 지난해 11월 한 인터넷 매체에 자신의 운동법을 소개한 글이 우연히 퍼지면서 불과 3개월 만에 온갖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됐다. 가족들조차 실감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제가 방송에 나와 역기를 드는 모습을 친정 엄마가 보셨나 봐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밥상도 못들던 네가 정말 내 딸 맞냐. 신들렸느냐?'그러시더라구요."

자신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 줄 알지만 아무튼 자기 덕분에 보다 많은 이가 몸매와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일은 어찌됐던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한다.

"70년대 나온,'체력은 국력'이란 슬로건이 나라에서 권장한 것이라면 요즘 부는 몸짱 신드롬은 일반 사람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부는 바람직한 현상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그녀가 생각하는 진정한 몸짱은 어떤 사람일까.

"마음과 몸은 마치 쌍두마차 같은 것이죠. 진정한 몸짱은 몸과 마음이 모두 균형있게 발달한 사람이죠." 그리고 이 말을 꼭 넣어 줄 것을 부탁했다.

"몸짱보다는 건강 전도사 아니면 건강 메신저로 불렸으면 좋겠어요."

글=표재용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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