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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야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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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 조직폭력단을 뜻하는 ‘야쿠자’란 말은 도박 세계에서 비롯됐다는 게 통설이다. 2장 혹은 3장의 패를 뽑아 합한 수치의 1의 자릿수, 즉 끗수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 ‘오이초카부’란 도박이다. 서양의 트럼프게임 ‘블랙잭’과 비슷하다. 8, 9를 차례로 뽑을 경우 합은 17로 끗수는 7이 된다. 웬만한 사람이면 여기서 추가로 한 장을 더 뽑지 않는다. 그러나 이성적 판단보단 도박성이 앞서 한 장 더 뽑았을 때 3이 나오게 되면 끗수는 0이 돼 최악의 결과가 된다. 이 같은 몰상식한 행동이나 인생 설계가 야쿠자가 사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해서 8, 9, 3의 일본어 연어 발음이 ‘야쿠자’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쓸모없는 자’란 뜻이다.

 야쿠자의 형성은 사회 주류에 끼지 못하는 세력들의 반항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마피아에 이탈리아계나 중국계가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 내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조직원 중 30%가량이 에도(江戶)시대 이래 천민계급으로 취급받던 부라쿠(部落) 출신이다. 차별이나 경제적 이유로 학교를 못 다니거나 취업이 안 되는 이들이 절대적 권위(오야붕)와 추종자(고붕) 관계로 똘똘 뭉치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야쿠자는 자신들을 결코 야쿠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고쿠도(極道), 교카쿠(俠客)라 부른다. 나름대로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야쿠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존심과 체면이 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 내 규율과 제재도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가볍게는 근신·삭발이 있고 제명·파문·절연·단지(斷指)처럼 무거운 처벌도 있다.

 최근 야쿠자 간에 생존을 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 시스템의 투명화로 검은 돈을 챙길 몫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야쿠자 조직 간 인수합병(M&A)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합리적 조직 운영과 정보기술(IT) 마인드 도입에도 열심이다. 조직 내부에서도 야쿠자 두목이 되기 위한 으뜸 조건은 서열이나 싸움 실력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신속성이나 글로벌 사업 등 경영능력으로 바뀌고 있다(야마다이라 시게키, 『야쿠자에 배우는 조직론』). ‘나훈아 폭행설’ 등 툭하면 괴 소문의 도마 위에 오르는 야쿠자지만 내부적으론 ‘8, 9, 3’ 식의 몰상식한 인생설계가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자칫하면 “야쿠자만도 못한…”이란 말을 듣기 십상인, 격변의 세상이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