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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민 구하기 어렵고 한국인 키우기 어렵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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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법무부, E2 비자 요건 강화했더니 …

허위 학력, 성범죄자 등 거르는 효과
신청자 발길 뚝 … 학원 강사료 급등

 15일 오후 서울 천호동의 K학원. 이 학원 2층 강의실의 불이 꺼져 있다. 지난해만 해도 매일 5시간씩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회화 수업을 했던 강의실이다. 원장 김모(45·여)씨는 “외국인 강사가 월급을 올려 달라기에 ‘학원 형편상 어렵다’고 했더니 두말없이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원어민 강사의 비자 발급 요건이 강화돼 강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돼 폐강을 했고, 다른 학원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3월부터 학생 1400명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계획한 경북 경산의 한 사립대도 외국인 강사 21명이 필요하지만 5명이 강화된 비자 발급 요건 때문에 입국하지 못했다.

 ◆문제 강사 입국 불허=법무부는 지난해 12월 15일부터 새 ‘원어민회화지도 사증’(E-2 비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강사를 하려는 외국인에게 ‘범죄경력증명서’와 ‘건강진단서’(마약 흡입·에이즈 감염 여부 등 표시)를 내도록 했다. 새로 입국하는 이들에겐 자국 한국대사관 영사와의 인터뷰도 거치도록 했다. 일부 외국인 강사들이 ^마약 흡입^성범죄 경력^허위 학력 등의 논란을 일으키자 마련한 대책이다.

 실제로 9일 경기도에서 초등학교 영어강사로 일하던 미국인 세 명이 마약을 판매하다 적발됐다. 지난해 10월엔 동남아 아동 10여 명을 성추행한 캐나다인이 한국에서 강사로 근무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엄격해진 비자 발급 요건으로 강사들의 한국 진출이 까다로워졌다. 마구잡이로 들어오던 원어민 강사의 입국이 대폭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의 외국어 학원들이 원어민 강사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구인난은 인력시장이 협소한 지방에서 더 심하다. 대구 불로동의 K학원은 강사 5명 중 2명이 그만두는 바람에 최근 영어회화 강의 4개 중 2개를 중단했다. 원장 박모(38)씨는 “연봉을 올려 주겠다고 해도 ‘비자 갱신 절차가 번거롭다’며 다른 나라를 알아보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치솟는 강사료=외국인 강사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서 강사의 보수와 소개료도 오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외국인 강사 알선업을 하는 김모(43)씨는 “매달 30여 명을 소개했었는데 비자제도 강화 이후 5명에 그쳐 소개비를 40만원가량 올렸다”고 말했다. 수원의 G학원장 한모(36)씨는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월급을 50만원 올려 주기로 하고 강사 한 명을 채용했다”며 “강사료 때문에 수업료를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조치와 관련, 외국인 강사들은 “관련 서류 발급에만 2~4개월이 걸린다”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관계자는 “강사의 ‘질’을 따지자는 취지는 좋지만 원어민 강사 공급이 줄어 영세 학원들로선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협회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관계자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 때문에 학원가에서 인력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추후 모니터링과 의견 수렴을 통해 보완책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서울시 교육청, 인증제 실시하려니 …

‘말 못하는’ 선생님 없애려 도입 추진
기존 교사 재교육하다 세월 다 갈 판

 서울 A중 3학년 이모(16)양은 영어 수업 시간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영어에 능통한 이양은 수업시간에 궁금한 점을 영어로 질문하곤 했다.

하지만 영어 교사는 이양은 물론 영어를 잘하는 같은 반 몇몇 학생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손을 들어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영어 잘하는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배제한 것이다. 이양은 “초등학교 때 6개월간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다녀와 영어에는 자신이 있다”며 “선생님이 영어로 수업을 안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질문조차 받지 않아 너무 답답했다”고 말했다.

 ‘영어 못하는 영어 교사’들이 너무 많다. 교육부가 2006년 전국 3만2000여 명의 초·중·고 영어 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영어로 주당 1시간 이상 수업할 수 있다’고 밝힌 교사는 49.8%에 불과했다. 그나마 1시간도 교과서를 읽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교사가 한국말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15일 이런 영어 교사들의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영어능력인증제’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영어 교사로 임용되면 첫 1년간은 의무적으로 영어수업 컨설팅도 받도록 할 방침이다.

 영어능력인증제는 서울 지역 영어 교사를 대상으로 영어 강의 능력을 평가하고 원어민 면접을 거쳐 자격증을 주는 제도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영어인증 자격증을 따지 못해도 신분이 보장된 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줄 계획은 없다”며 “교사들에게 자극을 주고 경쟁을 유도해 영어 구술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의 초등학교 영어전담 교사는 930명, 중·고교 영어 교사는 4800명이다.

 현재 진행 중인 영어직무 연수 기회도 늘리고 의무화할 방침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영어 교사의 연수 이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자료를 근거로 영어 구사능력에 따라 맞춤형 연수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2년까지 2000명의 영어 교사에게 직무연수와 심화연수를 시켜 실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시교육청의 이런 방침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를 매년 3000명(신규 1000명, 현직 재교육 2000명) 양성하겠다는 이 당선인의 계획을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겠다는 것이다. 시교육청은 조만간 영어능력인증제 도입 시기 등 세부계획을 마련할 방침이다.

 전병만 전북대 영문과 교수는 “교사 영어능력인증제의 취지와 아이디어는 좋다”며 “그러나 인증을 하는 연수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교사들의 반발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동대부고 교사) 전국영어교사모임 사무총장은 “무작정 영어로만 수업해서는 실력이 모자라는 학생들을 방치할 우려가 있다”며 “영어 능력에 따른 수준별 수업을 해야 실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노필·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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