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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가 10장이나 뭐 필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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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 정부 출범을 한 달여 앞둔 대한민국은 ‘인사의 계절’을 맞고 있다.

 초대 총리와 장·차관 인사, 후속 공무원 인사를 앞두고 관가는 말 그대로 폭풍전야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인선팀은 한 달 가까이 잠행하며 옥석(玉石) 고르기에 혈안이 돼 있다. 이 당선인이 선호하는 부하직원의 모델은 뭘까.

◆MB의 구인광고는‘열정+전문성’=측근들은 “이 당선인은 ‘열정이 있는 전문가’를 가장 선호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당선인의 서울시장 시절 교통관리실장으로 대중교통시스템 개편을 주도한 음성직 도시철도공사 사장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이 당선인은 서울시 간부들의 견제를 뚫고 신문사 교통전문기자였던 음씨를 1급으로 발탁했다. 교통 문제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이 당선인은 버스전용차로제 실시 초반 혼선의 책임을 음씨에게 물어야 한다는 건의를 물리치고 결국 시장으로서의 첫 작품을 완성했다. 14일 “차관엔 전문직이 임명돼 부처가 효과적으로 일하도록 하겠다”는 신년 회견 발언을 놓고 외부 전문가의 영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당선인은 사람을 쓸 때 전문 분야를 강조한다. 경선 캠프 시절 기획통인 권택기 현 비서실 정무팀장이 캠프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행정팀에 배속된 것을 보고는 “아니! 이 사람이 왜 여기 와 있어?”라며 당일 기획본부로 발령을 냈다.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능력’도 이명박 시대에 맞는 인물형이다. 이 당선인이 총리후보군에 포함된 손병두 서강대 총장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손 총장은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지내며 김대중 정부의 재벌규제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5년 전 ‘노무현 인수위’ 때도 “정부가 민간기업의 내부 조직에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결국 사퇴했다. 이를 본 이 당선인이 “힘든 상황에서도 주관을 밝히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대신 써준 보고서 읽는 사람 질색”=당선인이 질색하는 스타일은 한마디로 ‘비효율적 인물’이다.

 서울시장 초반 A4용지 10여 장에 ‘서론-본론-결론’ 형식의 보고서를 들고 온 직원 한 명이 혼쭐이 났다. “10장이나 뭐가 필요해? 이건 종이 낭비야.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만 간단히 써오면 되지, 왜 핵심을 못 찌르나”란 질책이 쏟아졌다. 이후 시장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는 A4용지 두세 장 분량으로 줄어들었다.

  그는 참모가 올린 아이디어를 단 한번에 “오케이”하는 법이 별로 없다. “그게 되겠어? 이런 문제가 있잖아”라고 되묻는 스타일이다. 측근들 사이에 ‘어깃장 화법’이라 불리는 특유의 반문법이다. 남이 써준 보고서로 보고하다간 망신당하기 일쑤다. 조목조목 캐묻다 “당신 말고, 보고서 쓴 실무자 데려와”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 당선인에겐 ‘냉소적이기보다는 오버하는 인물이 낫다’는 지론도 있다. 서울시장 때 청계천 2층버스 도입에 대해 ‘버스의 폭과 높이를 규정한 자동차관리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는 공무원에게 “왜 안 된다고만 생각하느냐. 규격에 맞는 2층버스를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 호통을 쳤다.

 토론 때 의견제시 없이 다른 사람 말에 맞장구치거나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는 사람에게 이 당선인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한자성어를 많이 섞는 사람, 거창한 담론에만 매몰된 사람 들도 이 당선인이 멀리하는 인간형이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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