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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관심에서 리더십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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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젠 우리의 이웃이 된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우리 청소년들도 뭔가를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는 범고등학교 위원회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13일 경기도 용인의 숙명여대 연수원에서 열린 호비(HOBY) 한국리더십 세미나. 200여 명의 참석자 가운데 인권변호사가 꿈이라는 변진영(16·한국외대 부속 외국어고 1학년)양이 마이크를 잡고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강연자인 미국 호비재단 대표 하비에 라피안자(43) 대표가 답했다.

“어리기 때문에 못 한다고 생각지 말고 지금 당장 해 보세요. 여러분과 같은 청소년이야말로 용기를 가지고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라피안자 대표의 답변이 끝나자 민족사관고와 전국의 외국어고 등에서 온 200여 명의 학생이 앞다퉈 “탈북자들의 정착에 대해 한국청소년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일본군 피해 여성 할머니에 대해 세계에 정확히 알려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호비 세미나는 외국 대학에 진학해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려는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강연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면서 관계자와 면담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선발되는 20여 명의 학생에겐 올 7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세계미래지도자회의(World Leadership Congress)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회의는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뽑힌 우수한 학생들이 각종 강연과 토론을 통해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받는 자리다.

12~14일 열린 한국 세미나에 강연자로 참석한 라피안자 대표를 만나 청소년 리더십에 대해 들어봤다.

-리더십에서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열쇠다. 학생회장을 하든, 최고경영자(CEO)를 하든 마찬가지다.”

-리더십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열심히 일하고, 주도권을 쥐고, 무엇보다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리더십의 본질이다.”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한국 방문이 처음인데, 한국 학생들의 적극성에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런 적극성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게 하려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게 해 주는 힘이다.”

-세계를 바꾸고 변화를 도모하려면 여러 다른 아이템이 있지 않나.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도 있고, 정치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데 특히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는.
“리더십은 그 모든 것의 열쇠다. 환경 문제에도, 정치 문제에도 무엇인가 제대로 해내려면 리더십을 배양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리더십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비 프로그램의 특징은 무엇인가.

“가장 큰 의미는 전 세계의 어린 학생들을 한데 모아 리더십을 함양하는 데 있다고 본다. 생각해 보라. 호비 세미나에서 만났던 이라크 학생과 미국 학생이 나중에 외교관이 돼 정부 간 협상 테이블에서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호비 프로그램은 두 사람은 물론 두 나라 모두에 도움을 준다. 그것이 전 세계 35만 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유다.”

-한국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남과 부딪쳐 보라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세계미래지도자회의에서 미국 학생에게서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보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던 한국 학생이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던 사례가 있다. 그 학생은 미군이 철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미국 학생과 충돌할까 봐 염려해 두루뭉수리로 답변했다고 한다.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껍데기를 벗고 남과 진솔하게 부딪쳐 보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성실하게 듣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또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한국 학생들은 매우 적극적인 편이다. 호비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전화 문의가 상당히 많다(웃음). 한국에 있는 한국 학생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관심도 뜨겁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청소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활동해야 한다(Think globally and act locally)’는 것이다.”

-호비 프로그램 수료자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는.

“올해 16세인 케이틀린 차나라는 학생이다. 호비 프로그램을 수료한 뒤 ‘러브 레터스’라는 비정부기구를 만들어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선물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학생이 이 단체를 13세에 만들었다는 점이다. 케이틀린과 같은 사례들은 호비 수료자들 중에서 수없이 많다. 우리 프로그램의 장점은 이런 학생들끼리 모여 네트워킹이 가능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거다.

매트 크레이그라는 현재 22세 미국 학생도 기억에 남는다. 호비 세미나에 참석한 뒤 지금까지 35만 명의 수료자를 잇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각자의 경험담을 담은 책을 출판해 그 수익금으로 민간재단을 만들기도 했다. 청소년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놀랍지 않은가.”
-최근에 학생들로부터 들은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무엇인가.

13일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호비 세미나에 참석한 200여 명의 학생들이 강연자인 라피안자 대표에게 열띤 질문 세례를 펼치고 있다.

“한 이라크 학생이 이라크전쟁과 관련돼 있다는 일각의 주장으로 논란이 됐던 미국 석유회사 핼리버턴의 고위 관계자에게 ‘손에 피를 묻히고 돈 버는 기분이 어떤가’라고 물은 것이다.”

-어떤 답변이 나왔나.

“답변이 질문만큼 훌륭하지 못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웃음). 어떤 토론에서는 미국 학생이 ‘지구온난화와 같은 환경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하자 레바논 학생이 조용한 목소리로 ‘하지만 나에겐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하루 생존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했던 것도 인상 깊었다. 청소년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비 리더십 프로그램이 여러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는 낯으로 인맥만 쌓는 자리는 아닌가.

 “전혀 아니다. 강연자 그리고 학생들이 송곳 같은 질문을 서슴없이 주고받는 게 매력이다. 그런 일을 과감히 추진하는 게 리더이고,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리더십 배양 프로그램이 아닌가.”
 

◀라피안자 대표는 …

UC 샌타바버라대 출신으로 2007년 3월부터 호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 재학 때 학생회장으로 뽑혀 소수민족 학생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등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동보호 비정부기구인 ‘크리스털 스테어즈(Crystal Stairs)’를 비롯한 몇몇 재단의 대표와 기업의 CEO를 지냈다. 43세.

◆호비 리더십 프로그램=미국 할리우드 배우 휴 오브라이언(83)이 고(故)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에게 영감을 받아 1958년 설립한 민간재단이다. 전 세계 청소년들의 리더십 함양을 위해 각종 세미나 및 행사를 개최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 35만 명의 수료자를 배출했다. 한국에는 2003년 도입, 매년 1월 호비 한국 리더십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여기서 인정받은 학생은 미국의 유수 대학에 입학할 때 유리한 것은 물론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 HOBY는 ‘Hugh O’Brian Youth Leadership’의 약자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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