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특권의 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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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 보면, 공항 귀빈실은 왜 필요한가? 국빈이 왔을 때 또는 주요한 공무로 외국에 나가기 전 기자회견을 한다든지 할 때 장소가 필요해서다. 그런데 평상시 국회의원·장관들은 왜 꼭 거기를 거쳐서 드나들어야 하는가. 민초들과는 섞이지 않겠다는 특권의식은 아닐까. 그 귀빈실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국민의 세금이다. 여기에 기업인을 가세 시키겠다는 것이 옳은 방향일까. 해외여행이 잦은 기업인에게 출입국 수속을 간편히 해주는 것이 오히려 실용적일 것이다. 대신 귀빈실은 아예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사용도 엄격히 제한해 국민 세금을 절약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특권을 인정치 않는다. 출생, 가문, 계층, 재산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국가일지라도 공직을 담당한 사람에게는 불가피하게 특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모든 구성원에게 공직담임권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극소수만이 공직을 맡을 수밖에 없다. 공직은 결정을 내리는 자리이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보통 시민과는 차별된 대우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이런 이유로 공직을 맡는 자체가 권력이 된다. 15세기 이탈리아 일부 도시국가에서는 이런 폐단을 줄이기 위해 모든 공직을 추첨으로 선택했다. 오늘날 공직에 임기를 두는 것도 공직의 특권화, 권력화를 막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섬기는 리더십’도 이런 폐단을 줄이자는 얘기일 것이다.

근대국가의 출현으로 관료라는 명칭의 공직을 직업으로 삼는 집단이 생겼다. 이들은 공직에 수반되는 특권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게 됐다. 그 특권이 많은 나라일수록 후진국이며 우리의 과거가 그랬다. 시중에는 ‘모피아’라는 말이 있다. 재경부 공무원들이 마피아처럼 똘똘 뭉쳐 일생 좋은 자리를 보장해준다 하여 비꼰 말이다. 요즘 인수위에서 통폐합 대상이 된 부처들은 살아남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한다. 왜 이럴까. 누리던 특권이 줄 것을 걱정하기 때문은 아닐까. 국정홍보처 직원이 인수위에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자조했다. 이 정권, 저 정권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는 뜻인 모양인데 사실은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직 의식이 없다’는 말이 더 맞을지 모른다. 공직 의식이 없으니 정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자신은 공직의 특권만 누리면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원인은 이러한 특권을 폐지하지 못한 데 있다. 그들은 상대를 비난할 때면 언제나 ‘기득권 세력’ 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렇다면 정권을 잡았을 때 당연히 특권을 해체시키는 데 노력했어야 했다. 386 젊은 의원들이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청와대 사람들은 또 어떠했는가. 그들은 과거와 똑같이 떵떵거렸다. 그들은 상대가 누리던 특권을 빼앗아 자신이 누렸을 뿐이다. 특권의 폐지가 아니라 특권을 이동시켰을 뿐이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명박 당선인이 기업인 출신이기 때문에 기업인을 우대할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갑의 세상’에서 ‘을의 세상’이 됐다고도 한다. 기업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기업인 위주의 나라를 만들 수는 없다. 기업인은 사회 전체로 볼 때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인은 개별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다른 계층과 이해가 상반될 수 있다. 기업인의 활동을 막는 규제는 과감히 풀어 주는 것이 옳지만, 기업인이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갑의 자리에 있는 공직자들이 밉다고 그 임무를 기업인에게, 을에게, 넘길 수는 없다. 공직은 공직이기 때문이다. 공직의 특권은 없애되 공직 의식을 더 높여가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