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돈 부동산업에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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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은행들이 먹고 자고 마시는 소비성 서비스 업종을 상대로 돈장사를 늘려가고 있다.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가계 살림은 위축돼 돈 꿔줄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관련 대출이 시설자금 대출을 능가하는 등 은행 돈이 실물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은행이 24일 내놓은 '예금은행의 산업별 대출금 동향'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산업계에 대한 대출은 284조5039억원으로 1년 새 14.1% 늘었다. 이 중 제조업 대출은 107조9639억원(6.5% 증가)이었고, 이 가운데 제조업 시설자금 대출은 20조318억원(11.1% 증가)이었다. 이에 비해 부동산 개발 등 부동산업 관련 대출 잔액은 28조1788억원으로 57.8%나 늘어 제조업 시설자금 대출을 웃돌기에 이르렀다. 부동산업 대출이 시설자금 대출보다 많아진 것은 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 11년 만에 처음이다.

도소매.숙박.음식 등 소비성 서비스업에 대출 비중도 꾸준히 늘어 지난해 말 현재 서비스업 대출 비중은 45.2%에 달했다. 도소매업은 지난해 말 대출 잔액이 1년 새 21.6% 늘어난 40조6041억원이었고, 숙박.음식점업은 31.5% 늘어난 14조9051억원, 건설업은 22.8% 늘어난 23조4667억원이었다.

한은의 김주식 금융통계팀장은 "서비스업, 특히 부동산업에 대한 대출이 급증한 것은 경기 부진으로 설비투자가 위축된 대신 오피스텔.복합 쇼핑몰 등 대규모 부동산 개발 붐이 일었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부동산 관련 대출이 담보 잡기에 용이하다는 점 또한 관련 대출이 느는 데 한몫 했다.

전문가들은 "서비스업의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업종에 편중된 대출 구성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부동산.도소매.숙박.음식점.건설처럼 경기에 매우 민감한 서비스 업종에 여신이 집중되면 자산 부실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류.금융.컨설팅처럼 생산적 서비스업으로 대출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해 선진 신용리스크 분석기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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