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가입신청 앞둔 한국 日성공에서 배울것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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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신청이 곧 있게된다.우리앞에는 다행히 2권의 교과서가 있다.성공한 일본과 실패한 멕시코가 그것이다.일본의 사례는 OECD에 가입하려는 어느나라에도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일본은 1964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 8조국으로의 이행과 OECD에 가맹한다.일본에 있어서 1951년9월 샌프란시코 평화조약이 전후(戰後)정치상의 독립이었다면 OECD가맹은 국제경제사회에서의 홀로서기 선언을 뜻한다.
일본은 OECD가맹의 준비단계인 당시 이케다(池田)제2차내각에서 두가지의 굵직한 경제정책을 내놓는다.「국민소득배증계획(1961~70년)」「전국종합개발계획(1962년10월)」이 그것이다.이른바 태평양벨트(도쿄~오사카~북규슈를 연결, 공업지역을 이 연장선상에만 우선적으로 형성토록하는 계획.철강과 조선이 확고한 위치를 지킴)구상이 관심을 끌었고 지역개발 붐이 일게됐다. 일본은행의 신용이 확대되고 미국으로부터 자본도입이 이뤄지면서 재정투융자의 증대가 겹쳐져 경제가 부쩍 활기를 띠게된다.생산증대.수출확대.국제수지호전.물가상승이 있게된다.OECD에 가맹한 그해 10월의 올림픽이 끝나고 불경기에 들어간 소위 65년 불황과정에서 야마이치(山一)증권사 경영위기로 상징되는 증권불황이 나타나지만 오히려 불황을 산업구조조정 찬스로 활용하면서65년1월에 발표된「중기(中期)경제계획(64~68년)」을 통해일본경제는 고도성장기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는 것은 OECD가맹이 아니라 그후의 경제관리다.OECD가맹후 일본경제의 고도성장에 대한 기여율을 생산요소별로 보면 65~70년사이에 경제성장률 11.7%가운데기술이 7.0%,자본이 3.7%,노동이 1.0% 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특히 이 시기의 5년전후로 기술 기여율은 각각 5.8%,3.0% 에 머물렀었다.이는 일본이 OECD가맹후 中期경제계획하에서 강력한 과학기술정책과 자본자유화를 고도성장의 양대틀로 잡았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61~65년사이에 마이너스 44.2%를 기록했던 주가(株價)가 65~73년 사이에는 무려 5.3배나 뛰었다.
통상산업성은 산업기술관련에서「도입형으로부터 선진국 자기개발형으로의 탈피」를 기치로 들고 나왔다.그 방책으로서 산관학(産官學)공동연구와 외국기술도입의 조화,기업기술개발의 촉진,환경 및신에너지 기술개발계획등이 있다.OECD가맹 4년 후인 68년6월 기술도입 자유화시책(5만달러 이하는 자동승인)이 결정된 것은 일본경제성장을 뒷받침해주면서 기술경쟁력을 갖추는데 결정적인역할을 했다.
한편 자본자유화는 60~62년의 재팬펀드설립,소니의 뉴욕증시상장등으로 대표되는 제1차붐을 거쳐 67~72년 제2차붐(이른바 이자나기경기의 바람을 탄것)을 맞는다.물론 일본도 OECD가맹과 동시에 약속한「자본거래의 자유화에 관한 규 약」을 조속히 실행하지 않는다고 수년간 OECD와 미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東京=郭在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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