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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인의 주가 예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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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CEO 출신인 이명박 당선인도 주가로 업적을 평가받는 데 익숙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대선 막바지였던 지난해 12월 14일 여의도 한 증권사 객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나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라 허황한 정치적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정권을 교체하면 (주가지수가) 3000포인트 정도 회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한걸음 더 나가 “임기 5년 중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가는 게 정상”이라고도 했다.

 말이 쉬워 3000이지 현재 1800대인 코스피지수가 3000이 되자면 시가총액 상위 10대 종목의 주가는 최소한 지금의 서너 배는 돼야 한다. 더욱이 주식이 비싸질수록 주가를 띄우는 건 더 어려워진다. 같은 상승률이라도 비싼 주식의 값을 올리는 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해서다. 1000인 지수를 2000으로 끌어올리는 것보다 2000을 4000으로 띄우는 게 훨씬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이 당선인이 기업 CEO라면 주가에 장밋빛 희망을 덧칠하는 정도야 크게 나무라기 어렵다. 2000년 현대증권 이익치 전 회장도 ‘바이코리아 펀드’를 내놓으면서 “주가지수가 3년 안에 3000, 6년 안에 6000 간다”고 바람을 잡았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해 주가지수는 504.6포인트로 곤두박질했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 주가를 예단하는 건 위험천만하다. 주가가 경제 체질을 항상 정확히 반영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의 주가 상승률을 봐도 그렇다. 80년 이후 주가 상승률은 전두환 정부 때가 425%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당시엔 다른 나라 주가도 많이 올랐다. 미국·일본 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노무현 정부가 단연 돋보인다. 현 정부 5년 동안 주가 상승률은 각각 일본과 미국의 2.6배와 3.4배에 달했다. 노 대통령이 경제 얘기만 나오면 “주가를 보라”며 의기양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 딴판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 동안 투자는 암흑기였다. 80~90년대 두 자릿수까지 갔던 투자 증가율이 현 정부 5년 동안엔 평균 3%에도 못 미쳤다. 편 가르기 분배정책과 반기업 정서가 기업의 투자 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한 탓이다. 그 결과가 100만 청년 실업자로 나타났다.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데 일자리가 생길 턱이 없다. 중국 특수를 누린 수출 기업의 화려한 주가에 가려 약골이 돼 버린 경제 체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셈이다. 노무현 정권이 이번 대선에서 “처참하게 진” 것도 주가만 보고 “경제는 멀쩡하다”는 오만에 빠졌던 대가가 아니었을까.

 요즘은 미국에서조차 스톡옵션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영자가 스톡옵션에 정신이 팔려 기업 체질 개선보다 당장 주가에 약이 되는 인기 영합 정책에만 혈안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장부 조작까지 불사했다. 이 때문에 주가보다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얼마나 끌어올렸느냐로 CEO를 평가하자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하물며 국가 지도자가 주가에 집착하는 건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얼어붙은 기업 투자를 되살리고 그 결과로 경제 체질이 강해져 주가까지 오른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경제 체질을 튼튼하게 바꾼다고 반드시 그에 비례해 주가가 뛰는 건 아니다. 주가엔 다른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투자자도 그 정도는 헤아릴 만큼 눈높이가 높아졌다. 국민이 바라는 건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지 주가를 띄우라는 게 아니다.

정경민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