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Eye] 미국인의 새해 결의 ‘빚을 갚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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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30면

미국인들이 빚 무서운 줄을 이제야 깨달은 것인가. 새해 결의를 묻는 어느 설문조사에서 ‘빚 갚자, 저축하자’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미국에는 뚱보 인구가 30%를 넘는다. 그래서 새해 결의는 어김없이 ‘살빼기’가 으뜸이었다.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 대신 빚을 갚자는 미국인들의 새해 다짐이 2008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예사롭지가 않다.

미국인들은 집은 물론이고 자동차 등 내구소비재, 학자금까지도 장기할부로 낸다. 신용 하나로 뭐든 앞당겨 쓰는 신용사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200만 가구가 집을 차압당하고 120만 가구가 정부의 대출금리 조정으로 연명 중이며 주택에 이어 신용카드와 자동차할부금 연체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한다는 경고는 수없이 울려왔다. 그럼에도 이것이 지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충 세 갈래로 설명될 수 있다. 막대한 무역적자를 해외로부터의 자본유입이 메워주고 있는 것이 첫째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곧 상대국의 흑자를 의미한다. 연간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무역적자를 내면서 세계의 수출국들을 ‘먹여 살리는’ 격이다. 그 보답으로 흑자국들은 미국 국채와 자산을 매입해준다. 미 재무부채권은 47%가 외국인 수중에 있다. 미국은 기술 및 기업혁신의 일번지이고 가장 안전한 투자처라는 인식 때문이다.

미국은 금융 초강국이고 자본수지로 엄청난 흑자를 낸다는 점이 둘째다. 첨단금융기법으로 해외에 투자해 무역보다는 금융으로 더 큰 돈을 번다는 얘기다.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이고 달러 주도 국제금융 체제에서 오는 편익이 그 셋째다. 100달러 지폐는 찍어낼 때마다 시중에 거의 통용되지 않고 70%가 외국의 금고에서 잠을 잔다. 찍어내는 비용이 한 장당 4센트니까 미국은 거의 이자 없이 막대한 달러를 빌려 쓰고 있는 셈이다.

이 버팀목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해외자본 유입의 축소 내지 이탈 조짐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달러 본위제는 복수통화체제로 다극화하고, 무역적자는 달러 약세화에 힘입어 축소되는 경향이다. 서브프라임 후폭풍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글로벌 은행들의 부실자산 규모는 그들만이 아는 비밀이다.

여기에 미국의 경기마저 후퇴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다. 미국 경제는 이미 지난해 서서히 성장은 하되 일자리가 줄어 경기후퇴처럼 느껴지는 ‘성장 속 후퇴(Growth Recession)’ 국면에 접어들었다. 경기후퇴로 빠질 가능성은 반반이다.

미국 경제가 후퇴할 경우 글로벌 성장엔진 대역이 당장의 문제다. 유럽연합(EU)도 일본도 대안이 못 되고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성장세를 견지하겠지만 글로벌 엔진 노릇을 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중국 상품에 대한 미국 수요가 급감하면 중국의 자산거품도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새해 주요국 정상들의 신년메시지는 성장과 일자리, 이를 위한 경제개혁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올 지구촌 경제가 미국만 바라보고, 미국 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동조화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2008년을 ‘재동조화(Recoupling)의 해’로 부르기도 한다.

미국 경제가 좋아지기 전에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는 예측이 나도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지갑을 열기는 어렵다. 은행들이 대출초과 상태이고 개인 가처분소득에서 이자지급이 점하는 비율이 8.6%로 미국(7.5%)보다 높은 한국인들에게 ‘빚을 갚자’는 새해 결의는 남의 일이 아니다. 대미 수출의존도는 줄었다고 하지만 7% 성장에 연간 60만 개 일자리 창출은 대외여건상 과욕이 아닌지 냉철하게 되짚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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