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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출신 장교강도 격투끝 검거-목숨건 시민의식 승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훔친 소총을 들고 은행을 털러온 현역 육군중위를 검거한 것은첫 근무에 나선 청원경찰과 은행직원들,그리고 용감한 시민이었다. 목숨을 걸고 국민을 지켜야할 군장교가 강도로 돌변한 어처구니 없는 현실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지킨 직업윤리.시민의식은 큰 대조를 이뤘다.
범인 하기룡(河起龍.25)중위가 바바리코트안에 소총을 숨긴채서울성동구능동 국민은행 능동출장소에 나타난 것은 9일 오후3시35분쯤.河중위는 곧바로 K2소총을 꺼내『가스총을 풀라』며 청원경찰 임승재(任承宰.29.경기도남양주시일패동) 씨를 위협했고任씨가 반항하자 총개머리판으로 任씨를 때려 쓰러뜨렸다.
『모두 엎드려.쏴죽인다.』 은행직원 10명과 고객 4명이 고개를 숙이자 河중위는 객장안에 있던 20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창구로 가 여직원에게 소총과 대검을 들이대며『1천만원을넣어라』고 요구했다.
여직원이 돈을 담는사이 쓰러져 있던 청원경찰 任씨는 일어나 혼신의 힘을 다해 돈가방에 정신이 팔려있던 河중위를 덮쳤다.
『모험이긴 하지만 실탄이 없는것 같았어요.죽자사자 범인의 총을 붙잡고 늘어졌죠.』 任씨와 河중위가 뒤엉키자 기회를 보던 오육렬(吳六烈.37)대리등 직원3명이 창구를 뛰어넘으며 범인을덮쳤고 객장안의 시민 白모(45)씨도 가세했다.
당황한 河중위는 소총과 돈이 담긴 가방을 그대로 둔채 은행을빠져나가 어린이대공원 정문쪽으로 7백여m를 달아났다.
『저놈 잡아라.』청원경찰 任씨는 고함을 치며 河중위를 뒤쫓았고 때마침 현장을 목격한 시민 지영철(池泳哲.31.비디오제작사영업사원)씨는 자신의 엘란트라 승용차에 任씨를 태운뒤 차를 달려 河중위의 도주로를 차단했다.河중위가 차를 뛰어넘어 다시 도주하자 任씨등 2명은 40여m를 재추적,대공원 담벽에서 河중위를 덮쳤다.
河중위는 럭비선수출신의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이미 기가 꺾인데다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청원경찰과 시민 앞에서 맥이 풀린듯 붙잡히고 말았다.
『차라리 현역장교가 아닌 범죄꾼이었으면 마음이 더 편했을텐데….』 청원경찰 任씨와 시민 池씨는 10일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용감한 시민상을 받았지만 자신들이 붙잡은 은행강도가 엘리트 청년장교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운 표정들이었다.
〈表載容.金玄基.張世政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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