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진단>군기빠진 초급장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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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들어 장교들의 군기문란이 부쩍 많이 발생되고 있다.지난해 9월 장교 2명의 무장탈영사건이 발생해 군(軍)의 위신을 실추시킨 사건이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젊은 장교가 무장은행강도사건까지 일으켰다.특히 이번 사건 은 육사개교이래 초유의 일이라 더욱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장교에서 졸지에 은행강도로 돌변한 하기룡(河起龍)중위는 육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법무관 요원으로 선발돼 실무부대 근무없이 곧바로 서울대 법대로 편입해 4학년에 재학중인 인정받는 자원이다.
그가 이번 범행을 하게 된 동기는 93년 봄 법무관 시험에 낙방,실망해 자책감에서 벗어나려는 방편으로 경마에 손을 대 잃은 수천만원의 빚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그러나 이 사건을 개인적인 차원의 단순범행으로 지나갈 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군인이란 국토방위에 필요한 온갖 종류의 임무를 부여받을 수 있고,그 임무의 특성에 따라 지내는 환경도 천차만별이며,그에 따른 부담도 엄청날 수 있다.가령 장교로서 전시 적성국을 정찰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침투해 그나라의 국민인 것처럼 장기간 생활할 수도 있다.또 해외협력요원으로 가서 그가 국내에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갖은 고생을 겪을 수도,환대받을 수도 있다.전투중에는 극한 상황도 자주 발생할 수 있다.이때마다 이들에게 다가오는 부담과 유혹은 상상을 넘 어 설 수 있다.
그러나 국민과 軍은 이들에게 한계상황에서도 자신과 국가의 안보를 지켜주길 요구하고 있다.특히 최고의 군사교육기관인 사관학교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평소에 인내심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교육중 엄격한 규칙과 체력훈련 등을 겸 하고 있다.
사관학교 4년동안 수없는 시험중 단한번의 커닝으로도 퇴교하게 된다.어떤 경우에도 규칙과 신분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생활교육인 것이다.河중위의 범행을 두고 30년을 軍에 몸담아온한 예비역 대령은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작년 53사단 장교무장탈영사건 보다 더 치욕스럽다』고 했다.그도 과거에 서울대 사학과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적이 있지만 잠잘 시간조차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번 사건의 원인은 우선 장교의 자질문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지난 군사정권때 일부 정치군인이 나서면서 軍의 위상을 흐트러놓았고,이들이 몰락한 후 육사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질이 많이떨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다른 원인으로는 장교교육방식의 혼란에 있다.
자율과 책임이 전제되는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교육하는데 장교 교육이 뒤따라오지 못하는데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사관학교내에 아직도 일제때 습관이 남아있어 최근 젊은 세대의 사고와 너무 격차 가 크다고 한다.육사의 경우 자체내의 문제가 많음에도 이를 내부적으로만 해결코자 은폐하려고 하는 데서 발전의 한계가 있다.지난해 육사교장으로 있던 某장군이 육사의 현대화를 위해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교육제도와 생활규정을 고치는 과 정에서도 많은 저항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교교육에 일대 혁신이 요구되고,무엇보다도 장교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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