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향한무비워>14.美 뉴욕 영화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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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난해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렸던 뉴욕영화제(9월23일~10월9일)에서 젊은 영화인들이 공동제작한 영화 한편이「살아 있는 영화혼」이라는 평을 받으며 박수갈채를 받았다.스티브 제임스.프레드릭 막스.피터 길버트등 세명의 젊은 감독이 만 든 1백69분짜리 『후프 드림스』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불량 흑인 고교생들이 농구를 하면서 스스로의 생활양식을 개선하고 대학진학.스타로의 길까지 열어나간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다.세명의 감독은 이 작품을 찍기 위해 5년간 시카고의 빈민지대에서 주연 학생들의 집과 주변에서 함께 살았다.
영화제 기간중 링컨센터의 앨리스 튤리홀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장에서도 감동의 대화들이 오고 갔다.다른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지난 5년간의 시간이 아깝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며 그 5년은 영화를 만들었으므 로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고 대답했다.영화를 사랑하기에 영화일을 하고 있으며 성공과 수입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동부 뉴욕의 영화시장은 거대자본에 의해 흥행작만을 겨냥하는 할리우드와는 차별되는,이같은 영화혼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뉴욕 맨해튼 남쪽 웨스트 빌리지의 안젤리카 극장.이른바 뉴욕언더그라운드 영화문화를 대표하는 장소로 1년내내 흘러간 문제작만 상영한다.여기서 매년 뉴욕영화제에 맞춰 인디펜던트 영화제가열린다. 올해도 80여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일부가 팔리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기획 자체의 거래였다.안젤리카 극장앞에서 만난 영화기획자 조 파커는 『마약중독자들이 우글거리는 공립고교에서 벌어지는 학생폭력조직들의 싸움을 주제로 한 영화소재를 팔러 동료들과 함께 롱아일랜드에서 왔다』고 밝혔다.『시나리오를 보자』고 했더니 꺼내놓은 것은 A4용지 3장 정도의시놉시스(영화줄거리)뿐이다.『이런 걸로 거래가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아이디어만 확실하면 시놉시스만 가 지고도 감독이 즉흥적으로 연출해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뉴욕기반의 독립영화사(메이저영화사에 소속되지 않은 영화사)감독중 최근 『아마추어』라는 영화로 각광받고 있는 할 하틀리는 『배짱이 맞으면 당장 프로덕션을 차리고 작품이 끝나면 해체한다』고 밝혔다.1년에도 수백개의 프로덕션이 생겼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독립영화감독으로 마약거래를 하는 흑인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프레시』로 흥행과 평론에서 모두 각광받고 있는 보야즈 야킨감독은 『개성있는 독립영화들이 인기를 끌자 최근 할리우드의 자본도 투입되고 있다』고 밝혔다.능력만 있으면 자본은 들어오게마련이라는 것이다.
뉴욕시를 중심으로 한 미국 동부의 영화산업은 한마디로 마법의성이다.글 한줄로 영화흥행을 결정하는 막강한 뉴욕타임스의 평론과 마틴 스코시즈등 세계 최고의 영화인재들을 배출해낸 뉴욕대학이 존재하는 이곳은 영화산업에서도 특유의 지성을 뿜어내고 있다. 성공을 향한 영화인들의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도 자유로운 예술혼과 창작정신만이 영화산업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국동부 영상시장의 특징인 것이다. [뉴욕=蔡仁澤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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