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시인 존 키츠의 치명적 열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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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누워 있노라"

'영국민의 자존심'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후계자로 평가받는 영국의 천재시인 존 키츠는 1821년 오늘(2월 23일) 자신의 묘비에 이같은 문구를 새겨줄 것을 당부하며 25년의 짧은 생을 마쳤다.

19세기 초엽. 바이런, 셸리와 함께 낭만파의 기수의 이 천재시인은 "미는 곧 진리며 진리는 미다"라는 자신의 시속 언어처럼 미를 발견하여 그것을 시로 표현하는 일을 지상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렇게 영적인 향기가 가득한 섬세하면서도 달콤한 수많은 명시들을 남긴 키츠의 삶과 사랑은 시만큼이나 치명적으로 낭만적이었다.

"나는 우리 두 사람이 여름날 나비가 되어 딱 사흘 동안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당신과 그렇게 함께 보낸 사흘은 평범한 50년보다 더 많은 기쁨을 내게 가져다 줄 거예요."

키츠는 애인 패니 브론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렇게 썼다. 키츠의 생애 유일한 연인인 패니와의 연애는 그의 시에 비약적인 진보를 이끌어내어 《나이팅게일에게 To a Nightingale》,《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On a Greecian Urn》, 《가을에 To Autumn》,《하이피리언의 몰락 The Fall of Hyperion》,《성 아그네스의 전야》, 《성 마르코 전야》, 민요풍의 《무정한 미인》등 영국문학사상에 빼놓을 수 없는 주옥 같은 명작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사랑이 깊으면 병이 된다고 했던가. 완벽한 사랑을 꿈꾸던 시인의 열정은 연인의 방종한 생활과 무심하고 냉정한 반응에 몸과 마음을 모두 소진시켰다. 의심스러웠던 그의 건강은 1820년 최초의 각혈과 함께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는 패니와의 결혼을 결심한 키츠를 당혹스럽게 했다. 불안과 괴로움으로 인해 패니에게 원망의 편지를 계속 보내던 키츠는 의사의 강권으로 로마로 요양을 떠난다.

하지만 로마의 아름다움과 좋은 날씨도 연인을 두고온 키츠에겐 별 도움이 안되었다. 그녀를 두번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은 투병생활보다 더욱 큰 고통이었다. 결핵균이 폐 세포를 남김없이 파괴해버릴 때까지 계속된 그의 사랑은 선물로 받은 흰색 조약돌을 손에 꼭 쥔채 시인이 눈을 감으며 끝을 맺는다.

패니 브론은 지금까지도 키츠를 죽음으로 몰고 간 팜므파탈로, 또는 더없는 기지와 지혜로 시인의 고귀한 영혼을 사로잡았던 매력 넘치는 여자로 그 평가가 극단을 달리고 있지만 키츠의 시창작과 죽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편 그가 로마에서 투병생활을 했던 집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걸어 내려오던 로마 스페인 계단 한 모퉁이에 기념관으로 조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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