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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이 사양산업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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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 직장인 취업 사이트에 따르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직장인의 모습에 공감하는가’라는 설문에 92.8%가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가장 공감할 수 없는 것은 직장인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것과 호화로운 사무실 인테리어, 업무 중 잦은 외출, 고속 승진 등을 꼽았다고 한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왜 ‘실장님’들이 그다지 많고, 주인공들은 왜 그리 직장 연사를 많이 벌이는 것인가. 실제 직장 생활에서는 실장의 숫자가 많지 많고, 사내 연애가 그리 많이 이뤄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물론 드라마의 내용이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아니 오히려 배면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에 더더욱 출판인의 이야기가 으레 전제되는 사실 그 자체인 것처럼 선입견을 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래된 나무 책상과 낡은 서가 사무실이 이제 사라졌는데도 드라마 속 출판사는 이층 적산가옥 같은 곳에 있어 언제나 한결같은 그 타령을 하고 있다. 출판사 사장은 편집자를 무시할 정도로 무지한 사람이고, 편집자는 언제나 당하고만 사는 착한 사람인 그런 이야기의 창작은 식상한다.

 출판계의 왜곡된 모습이 자꾸만 확대돼 그려지다 보니 출판업에 입문하고자 하는 지원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가끔 지원자들을 만나보면 언제나 자장면을 먹고 이틀에 한번쯤은 야근을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데, 대답하기가 참 난감하다.

 책의 미래는 밝다고 낙관한다. 과학기술이 진보할수록, 정보 과잉 시대로 치달을수록 주체적인 자아가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삶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판단해야 할 필요성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급 정보를 담은 책은 이런 점에서 더욱 부각될 것이고, 또한 학습과 놀이로서의 책의 기능도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전체 책 판매량이 다소 줄어든 것 같지만, 그것은 경제 불황과 연관이 있는 것이지 출판산업 퇴조의 징후는 결코 아니다. 출판의 산업적 특성은 유연하다는 점에서 나온다. 그러니 책을 만드는 출판인의 현실을 왜곡하는 매체들의 태도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작 출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즐거움이나 괴로움은 매체에서 드러나듯 영세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감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다. 내 경우 출판을 해서 언제나 좋은 필자들도 만나고, 좋은 독자들도 만나면서 세상을 새롭게 배우고 익히니 좋다고 할밖에.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간다. 문득 어떤 정한이 스며드는 것을 어쩌지 못하겠다.

 올해는 시인 신석정이 태어난 지 꼭 100년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여 때늦었지만 유고시집도 발간됐다. 시집 맨 끝에는 시 ‘분향(焚香)’이 실려 있다. 세모를 맞아 왠지 쓰린 속을 달래주는 듯하다.

 “시나대 숲에 드는 바람/ 기척 없이 머물다 떠나는 소리.// 스산한 겨울밤이/ 조용히 흔들린다.// 어드메쯤 차가운 달은 기우는지/ 영창에 성근 가지 어른거리고.”
 자연을 벗하고, 바람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이불 호청 속으로 발을 들이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는 어느새 추운 바람이 싫고, 하루 종일 소란함 속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자리에 누구도 멈춰서 있을 수가 없다. 새로운 시간을 만나기 위해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할 따름이다. 당장 원전 번역으로 새롭게 나온 독일의 문예학자 발터 벤야민의 선집을 읽기로 해본다. 새날을 맞을 필사적이면서도 고요한 마음으로.

정은숙 마음산책출판사 대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