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KDI 내년 성장 4%대로 낮췄는데 … 신권력 도전 '7%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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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금 이명박 당선자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으로 꽉 차 있다. 꽁꽁 얼어붙은 기업의 투자 물꼬를 어떻게 틔워 내느냐다. 경제를 살려내야만 내년 총선에서도 과반 의석을 기대할 수 있다. 경제 살리기가 최고의 총선 카드다."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의 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 원동력은 '경제'였다. 끈질긴 'BBK 의혹' 제기에도 그가 지역.이념을 떠나 전국적 지지를 얻은 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지지 기반도 허물어지기 쉽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사람이 이 당선자다. 이 때문에 그의 '7% 성장' 공약은 경제적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명박표 7% 성장'은 신권력 앞에 놓인 새로운 도전이자 권력을 이끌어갈 동력인 셈이다.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7% 성장은 실현 가능하냐는 경제적 논란을 넘어 고도의 정치경제학이 깔린 화두"라며 "7%라는 숫자에는 경제성장과 내년 총선 승리라는 정치가 함께 녹아 있다"고 지적했다.

<관계기사 4면>

이 당선자는 26일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게 "(인수위가 해야 할 일의) 큰 줄거리는 민생경제"라고 주문했다. 인수위가 27일 첫 회의에서 채택한 8대 어젠다에도 이런 계산이 들어 가 있다. 여덟 가지 과제 중 '중산층과 서민에게 성장 혜택이 돌아가도록 민생 대책 마련에 최우선 방점'이 맨 윗줄에 올라 있다. 당장 내년 2월 대통령 취임 즉시 유류세와 통신요금 인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경제 살리기의 온기가 중산층.서민에게 먼저 피부로 와 닿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간단치 않다. 앞으로 10년 동안 7% 성장에, 4만 달러 국민소득을 올려 세계 7위 경제대국이 된다는 '747' 공약에 반론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대 김광웅 명예교수는 27일 희망제작소 주최 심포지엄에서 "7% 성장은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성장률"이라며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나라를 후진국으로 되돌리겠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7% 성장을 이루겠다는 건 정부 주도의 발전을 하겠다는 뜻인데 이는 작은 정부 공약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한국개발연구원(KDI) 현정택 원장도 "내년 성장률은 4% 후반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 원장은 "5~6개월 만에 경제를 살려낼 묘수는 많지 않다"며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클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경제학회 포럼에서도 "무리수 경제 공약은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현실경제의 맥을 짚어내는 본능적 후각이 그만큼 발달했다는 얘기다. 그가 찾아낸 돌파구는 기업 투자다. 당장 28일 경제 5단체장과 20대 기업 총수를 만나기로 했다. 주 대변인은 "이 당선자가 기업들은 내년에 20조~30조원의 투자 여력이 있는 만큼 이를 투자해 달라는 뜻을 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금산분리(대기업의 은행 소유 금지) 완화를 통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반대급부로 약속하겠다는 것이다. CEO 출신다운 주고받기 접근법이다. 정부의 인위적 경기 부양이 아니라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 경제에 불을 지피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는 이날 자신의 싱크탱크인 바른정책연구원 송년회에서도 "외국의 큰 기업이 나를 만나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여기에는 이 당선자 특유의 경제성장 계산도 깔려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아직도 성장에 배 고프다"고 말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12위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50위권이어서 아직 성장 여력이 충분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곽 교수는 "일단 2008년에 최소 6% 성장을 하고 2년 내 국민소득 2만4000~2만5000달러를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경제연구본부장도 "노무현 정부는 저성장의 덫에 빠졌다"며 "기업의 투자 여력이 충분하고 고용률을 높일 여지도 아직 많아 두 자릿수 투자 증가율을 기록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내년 총선까지 시간은 석 달 남짓이다. 그 안에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경제의 온기를 살려내느냐가 총선은 물론 집권 초 그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할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경민.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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